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 늦은 가을, 추위가 눈썹까지 와 있다. 달동물들은 곧 겨울잠을 자러 가겠다. 성탄절도 곧 오겠다. 나는 나와 사귀기로 한다. 잘 모르는 사이처럼 날마다 첫날로 삼기로 한다. 세상 일 새로 배우고, 알던 거 새삼 깨닫기도 하는 게 사는 일인데 자신이라고 새롭게 대하지 못할 건 무언가.

나는 나로 오래 살아왔다. 이렇게 한세월 함께 살았으면 잘 알 법도 한데 습관을 좀 알 뿐 나는 내게서 아주 멀다. 어느 때는 가장 모르겠는 사람이기도 하다. 주로 학교 집 교회를 오가는 슴슴하게 사는 생활, 이따금 바다를 보러 가고, 강변을 걷고, 남쪽 도시의 오래된 빵집 조식 시간에 맞추기도 하는 그런 일은 사는 일의 한 부분이다. 취향이나 생활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열의가 툭 떨어지는 날이 있다. 어서 노쇠해져도 좋겠다는 치기 어린 무력에 더해 내동 기쁘게 해내던 일들이 자주 시들하면 오호라, 이 무슨 종말론적 우울인지 싶기도 하다. 마음이 가끔 굴속으로 들어가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호젓하게 들어박히면 번잡하지 않아 좋은 위안도 있지만 반짝이는 생기가 사라진다는 후유증이 뒤따른다.

세상 익히고 대처하느라 더불어 살아온 자신 고려하는 일은 엄두를 안냈을까. 하고많은 책들은 모두 사는 일을 이야기하는데 제 삶을 대상으로 삼는 커리큘럼이 문학 교과에는 없다. 학문은 이론을 제시할 뿐 성찰은 각자 할 일이다. 아는 걸 제 삶에 가져오자면 차분하고 호젓한 대면과 실행이 필요했으나. 거기 무심한 건 자신만 들여다보면 죄밖에 보일 게 없다는 종교적 신념도 한몫했을까 그리스도는 정작 그런 말씀한 게 아닐 수 있는데. 아는 것과 실천의 사이가 아니라 둘을 다 내박쳤다는게 맞겠다.

물론 누구도 자신에게 방치만 내리는 삶은 없다. 유기농 식품 때때로 섭취해가는 방식으로 몸을 돌보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대도 문학 작품 분석하듯 밤을 지새우며 제 삶 전반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오래 인사 나누며 사는 누구 대하듯 잘 알지 못한 채 나는 나와 나이들어 가나보다.

사는 동안 몇 차례쯤 조율 시기를 만난다. 자신뿐 아니라 주변도 달라져 모든 관계를 재조정해야 할 시기에 당도한다. 환경과 자신이 달라지면 재배열은 당연하다. 평생 느려터질 수만도, 평생 급하기만 할 수는 없다.

낯간지럽게도 더 밍밍하게 지내며 나와 친해지기로 한다. 자신과 사귄다고 별게 없으니 쉬운 걸 하면서 천천히 지내보기로 한다. 무심하지 않게 유심하게, 익숙해지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개시하는 거다. 하여 우선 열심히 하지 말자고, 일은 늘 있으니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자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오늘 기쁨은 오늘 누리면서 느릿느릿 지내자고. 더하여 완전 심심해지기로 작정한다. 혼자 있을 때는 온전히 혼자이면서 완전 심심해 보자고. 매체를 멀리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밑줄 그으면서 책 읽는 기쁨에도 잠깐씩만 몰입하는 거다. 그러다가 바닷가 마을에 작은 책방 여는 실현 난망한 로망도 꺼내 드는 거다. 물이 드나드는 시각 눈발 흩날리듯 반짝이는 물살의 움직임 신기하게 바라보는 그런 일, 작은 마당에 배롱나무가 있고 빨갛게 녹슨 철대문이 있는 작은 책방. 어디에도 없고 어디엔가 있을 것도 같은 그런. 먼 나라로 열기구를 타러 가는 일은 어떨까 싶은 것들도. 고소공포에는 가당치 않을 백일몽이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던 단발머리 시절 어디쯤, 문학도 시절 어디쯤, 처음 강단에 서던 때를 기억하며, 삶의 일몰이 올 때를 떠올려보기도 하는 거다. 신께서는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셨다니 자신을 귀하게 대우하다가 어느새 다른 이가 더 소중하고 절실해 지기도 하리라고 새삼. 살다 별짓 다 하는 걸 민망해하지 않기로 한다. 뻔한 것도 아는 것과 사는 게 다르더라고, 아니 그것도 모르겠고, 오늘은 우선 밍밍하게 가차워지는 방식으로 가보자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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