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선으로 악을 쫓고 베풂 나누는 명찰”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2018년 세계유산에 등재
이중환 '택리지'서 십승지로 꼽혀... 백범이 일경 죽이고 은신도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든 마곡사 대웅보전

[동양일보 유환권 기자]절과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춘마곡 추갑사(春磨谷 秋甲寺)’라는 말을 쓴다. 봄엔 마곡사, 가을은 갑사로 쳐줄 만큼 계절별 특색이 있다는 뜻이겠지만 마곡사는 사계절 언제라도 방문객을 마음껏 푸근하게 품어준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하더라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고, 그래서 예산 수덕사를 말사로 뒀을만큼 웅대했다.

하지만 크기가 중요할까. 우주 삼라만상을 관장하는 부처의 가르침 앞에서는 그저 '겉옷'일 뿐이다.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심(信心)은 겉옷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의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6교구 본사(本寺)다.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명찰이다. 1000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정면에서 바라본 마곡사 대웅보전 전경
정면에서 바라본 마곡사 대웅보전 전경

 

마곡사 주변은 약 5km 구간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자연상태로 이뤄져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십승지로 꼽혔을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마곡사는 그래서 걷는 재미가 쏠쏠한 사찰이다. 높고 깊고 험준한 태산준령 한가운데 있지 않고 그저 편하게 숲속길을 20여분 걸어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을 한 일이 있다.

당시 마곡사에 은신하고 있던 김시습을 만나러 왔으나, 그가 부여 무량사로 떠난 뒤여서 세조는 헛걸음을 했다.

그러자 세조는 “영산전은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라 극찬하고 영산전 편액을 쓴 것이라 전해진다.

현재 마곡사는 대웅보전(보물)을 비롯한 대광보전(보물), 영산전(보물), 사천왕문, 해탈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모두 일자형으로 배치된게 특징이다.

이 밖에도 주요 문화재로는 5층석탑(보물)과 범종지방유형문화재), 괘불 1폭, 목패, 세조가 타던 연(輦) 등이 보존돼 있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과도 끊을수 없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백범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탈옥해 마곡사에서 은신했다. 당시 법명은 원종이었다.

지금도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백범교가 있다. 이곳 '백범 솔바람 명상 길'은 마곡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1시간가량의 도보 코스로 인기가 높다.

백범을 추모하는 전각 '백범당'과 그가 해방 후 여러 동지들과 찾아와 기념식수를 한 향나무도 그대로 있다.

마곡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선생의 고절한 민족애를 느끼고 돌아간다.

연말연시 입시철에는 학부모들을 위한 수능 100일기도로 치성을 드리러 오는 불자들이 많다.

1년 과정으로 운영하는 불교대학(2024년 2월~2025년 2월)도 열어 현재 40명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마곡사 해탈문을 나오면 찻집 다루정이 있고, 그 앞에 서 있는 돌비석이 눈길을 끈다.

"사랑으로써 분노를 이기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라. 베풂으로써 인색함을 이기고 진실로 거짓을 이겨라."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

 

법구경에 나오는 가르침이라 하는데, 속세의 인간군상들에게 ‘신앙이 가르쳐 주는 참됨’임을 느끼게 한다.

두고두고 눈에 남는다. 공주 유환권 기자 youyou999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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