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지난 10월 30일 여당 대표의 말 한마디에 ‘김포시 서울 편입’이 치열한 정치쟁점으로 떠올랐고, 서울 편입을 노리는 주변 지자체의 동참으로 ‘메가시티 서울’로 단계를 높여가고 있다. 여당은 모처럼 만의 정책 선점으로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듯하고, 야당은 뜬금포 같은 정책인 줄 알면서도 반대도 그렇다고 덥석 찬성도 못 하는 어정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의 질곡에서 간신히 벗어났으나 인플레이션 공포가 발톱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고, 유럽에서의 전쟁만으로도 벅찬데 중동에서 참혹한 충돌까지 터지면서 지금 세계는 정치도, 경제도 어디로 갈 것인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이런 절체절명의 시점에 여당은 도대체 왜 ‘김포시 서울 편입’ 카드를 꺼내 들었으며, 야당은 적절한 정책도 적절한 시점도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어째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는가?

중앙과 지방의 관계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과제는 지나친 중앙집중 현상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이냐이지 수도 서울과 수도권의 비대화는 결코 아닐 것이다. 서울·경기·인천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으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53%가 여기에서 창출되고 있다. 이만하면 수도권 집중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수도권 쏠림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쏠림의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구와 경제활동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지방의 인구 및 경제를 잠식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수도권마저도 빈곤의 늪에 빠트리게 된다. 반대로 인구 및 경제활동이 수도권으로의 구심력에서 벗어나 수도권으로부터 지방으로의 원심력을 키울 수 있다면 나라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91년 지방의회가 성립되고 1995년 자치단체장이 민선에 의해 선출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제도의 골격을 갖춘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으나 출범 초기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중앙정부 기능의 지방 이양이나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치(自治)란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권한만이 인정되고 있으며, 그 권한에 비례한 책임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 50.1%이나 수도권의 높은 재정자립도의 영향일 뿐, 아직도 46개 시·군·자치구가 자체수입만으로는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고 지방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앙 행정의 과감한 지방 이양과 함께 재정자립도 제고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제 30년의 지방자치 경험을 살려 과감한 권한의 이양과 함께 엄격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 중앙과 지방이 동반 성장하는 ‘꽃피는 지방시대’를 열어야 할 때이다.

지난 11월 13일 대전·세종·충남·충북 4개 시·도지사가 ‘준비된 메가시티, 충청시대 선포식’을 열고 8년여의 논의와 연구를 거친 ‘충청권 메가시티’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충청권 4개 시·도의 인구는 56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1% 정도이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12.54%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과 영호남의 중간에 있어 수도권의 과밀 인구를 흡수하고 중앙과 지방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세종의 정부 제2청사, 대전의 과학단지, 충북 오송의 바이오단지 등 행정, 연구, 첨단 산업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유수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유치하여 힘찬 도약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충청권 메가시티’ 프로젝트는 치밀하고 민주적인 준비 및 진행 과정을 거쳐야 하며, 충청권 주민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그 당위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하며,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어떤 선거결과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한때 의욕적으로 추진되었던 ‘부울경 특별연합’이 결국 무산되고 말았던 역사를 소중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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