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사랑과 편견과의 관계를 다룬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19세기 초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을 꼽을 수 있다. 소설 오만과 편견은 워낙 유명한 명작이어서 소설 이외에도 드라마와 영화로 다양하게 각색되어 재해석 된 바 있는데 가장 최근으로는 2005년에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가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 역으로, 상대역인 피츠윌리엄 다아시 역으로 매튜 맥퍼딘(Matthew Macfadyen)이 활약했던 조 라이트 감독 버전의 오만과 편견이 있다.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하여 영화가 원작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었음에도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영상미가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만과 편견은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가졌던 편견들을 극복하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통해 자신의 오만하고 교만한 태도를 개선함으로써 서로 사랑의 결실을 이루었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오만의 사전적 의미는 건방지거나 거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제인 오스틴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통해 타인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오만이고 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편견이라고 정의한다. 얼핏 오만과 편견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단어인 듯하다. 하지만 오만함의 상당 부분은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되며 이는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집단 이외의 개인과 집단에 대한 이유 없는 부정과 혐오로 이어지게 된다.

편견은 각각의 개인이 갖는 개성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들을 쉽게 범주화 또는 그룹화하여 사고하는 고정관념으로 발전한다. 그러한 고정관념의 기저에는 범주화한 타인들에 비해 자신은 우월하다는 오만이 자리 잡게 된다. 진화 생물학에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공포에 대한 적응 수단으로 편견을 설명한다. 쉽게 말해 어렸을 적에 조개를 먹고 배탈이 난 적이 있었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조개를 먹는데 두려워할 수 있다. 또한 물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운 적이 있었던 사람은 물에 대한 공포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개인이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조기에 회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진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실제 원인이 상한 조개 때문이고 미숙한 수영 실력일 수 있었다는 점이 더 합리적일 수 있음에도 이 같은 편견을 극복하기는 마냥 쉽지 않다.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편견이라는 진화 생물학적 적응은 사람이 가진 인지적 자원의 효율적 사용 결과라는 설명도 있다.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상황과 사람들에 대해서 매번 새롭게 생각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빠른 판단을 내림으로써 효율적으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같이 편견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이기는 하나 모든 것을 편견에 의존하면 사람 사는 사회가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행동이 부지런하려면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듯 지속적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려는 사고의 부지런함이 없으면 그 사람은 결국 편견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각종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요즘이다. 정보의 풍요로 인한 장점도 있지만 때로는 그러한 정보로 인해 없던 편견이 발생하고 기존의 편견이 증폭되는 경우도 많다. 오만과 편견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 따름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은 오만과 편견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지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매사에 편견 없는 합리적 판단을 위해 스스로 부지런히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인지적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진화 생물학적 발전을 역행하는 것도 남녀 간의 사랑을 위해서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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