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주필

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동양일보]은행나무와 마로니에 잎이 예쁘게 물들던 10월 끝자락, 공원에서 시낭송대회를 열었다. 늘 실내에서 열던 대회를 코로나가 끝나가던 지난해 가을부터, 하늘이 보이고 햇빛과 바람이 춤을 추는 열린 장소인 공원으로 옮겨서 열고 있다. 그것도 이 지역 출신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7개나 세워져 있는, 이름마저 시(詩)적인 ‘마로니에 시(詩)공원’에서.

처음 공원에서 대회를 열기로 결정한 후엔 걱정을 많이 했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낭송하는 발표회가 아니라 우열을 가려 시상하는 대회를 열린 공간에서 진행하는 것이 괜찮을까. 날씨가 춥거나, 혹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장소를 옮기거나 순연을 해야 할 텐데, 마이크며 음향이며, 천막에, 의자에, 테이블에 준비할 것도 많은데.

사방이 벽으로 막힌 실내에서는 참가자와 심사위원이 온전히 낭송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대회로서는 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에 비해 사방이 트인 열린 공간은 방해요인들이 많이 생긴다. 거리의 소음, 오토바이와 자동차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그럼에도 장소를 옮겨보고자 기획한 것은 열린 공간에서 대회를 여는 낯선 일이 새로운 문화가 될 수 있고, 시를 밖으로 끌고 나올 수 있겠다는 의도 때문이었다.

밀레니엄을 앞둔 1990년대부터 동양일보가 시낭송운동을 벌이며 대회를 열고 시낭송축제를 열기 시작한지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낭송대회’라는 낯선 행사는 이제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사가 되어 매년 전국에서 200여 개가 넘는 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자체마다 대회를 열고, 시인의 이름을 딴 대회가 열리고, 수많은 동아리들이 만들어지면서 소소한 대회들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지자체 축제마다 시낭송 한 종목 쯤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됐다. 시낭송이 당당한 예술문화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렇게 시낭송이 붐을 이루다보니 전국 어디에서나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축복이다.

그러나 과열에 따른 폐해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참가자를 늘리기 위해 대회마다 경쟁적으로 상금을 걸고 그 액수가 점점 늘어나다보니 상금을 겨냥한, 소위 시낭송대회를 순례하는 ‘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대회용 낭송시들이 불과 몇 수로 고정돼 가고 있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가 수만 개가 넘음에도 대회마다 거의 같은 시들이 낭송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진정으로 시를 사랑해서 낭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낭송을 단지 상을 타는 도구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낭송 대회의 환경을 바꿔보고 싶었던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시비가 있고, 시를 전시하는 탁 트인 공간에서 시낭송 대회를 치르면, 참가자나 청중이나 시낭송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시를 읽고 쓸 때 열린 공간에서 했다. 사방이 트인 정자거나, 경치 좋은 바위 위, 또는 바람이 좋은 나무 그늘에서 시를 읊었다. 내가 어릴 때 나의 외조부는 고정적으로 시회(詩會)에 나가셨다. 평생 상투를 틀고 수염을 자르지 않은 우리 시대 마지막 선비인 외조부는 시회에 가는 날이면 깨끗이 손질한 흰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나가셨다. 의관정제란 마음을 맑고 바르게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열린 공간을 통해 그 문화가 되살아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이 눈부시면 손 그늘을 만들며 시낭송을 하면 되지 않을까. 낙엽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모습 자체가 시가 아닐까. 지나가던 행인이 발길을 멈추고 시 한 소절 듣고 가면 그 또한 행복이 아닐까 등등의 순기능은 야외에서의 대회에 당위성을 갖게 했다. 대회니만큼 수상자와 낙선자가 갈리기 마련이지만 햇빛에 반짝이는 대왕참나무 잎을 보느라 잠시 시어를 잊으면 어떠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시낭송을 하고 기분이 좋으면 상을 타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이날 대회에서는 두 명의 내빈이 참석했다. 한 사람은 ‘모밀꽃’ 시인 정호승의 아들 정태준 작곡가였고, 또 한 사람은 중국 연변의 리임원 시인이었다. 시로 곡을 만드는 정 작곡가는 시 낭송의 내적 리듬으로 악상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고, 리임원 시인은 한국으로 오기 전날 연길시에서도 시낭송대회가 열렸다며, 충북의 ‘명사시낭송회’에 참석했던 연변의 시인들이 연길시와 길림시 등에서 시낭송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의 전파란 이런 것이다. 멀리 모스크바의 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김혜란 교수는 얼마 전 러시아 대학생들에게 한글 시낭송대회를 열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열린 공간에서의 낯선 시낭송도 곧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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