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환 수필가

양미환 수필가

[동양일보]휴일 날 모처럼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머릿속은 쇼핑한 옷들 생각으로 가득 찼고 나에게 날개가 되어 줄 옷들로 기분은 벌써 하늘을 날고 있었다. 쇼핑가방을 흔들며 걸어가다 내 시선은 처음 보는 자전거 한대에 꽂혔다. 자전거 뒤에는 배달 오토바이에 실리는 음식 배달통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자전거로 배달을 하는 배달 자전거가 분명했다. 자전거 주인은 아주 젊은 청년이다. 아니 초로의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 티를 다 벗지 못한 모습이다.

오토바이 배달은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자전거 배달은 처음 본다. 한참을 내 시선이 그 배달 자전거를 따라 갔다. 처음엔 신기한 마음이었다가 배달 자전거가 눈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자 마음이 그를 따라 가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오토바이 속 자전거의 생존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경쟁은 무모한 짓이고 승산 없는 무리수가 분명하다. 그 분명함을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오토바이를 가질 수 없는 경제적 능력의 한계일 것이라는데 까지 내 오지랖이 펼쳐지고 마음은 사서 고생을 하기 시작한다.

자전거로 시작한 그가 오토바이를 가질 수는 있는 세상일까 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혼란스러워 진다. 오토바이를 갖기 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설움을 견뎌야 하는 자전거 일지 경쟁력 자체를 잃은 약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다. 경쟁은 모든 여건이 비슷할 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출발선 자체가 이미 결정 된 승부라면 경쟁이란 말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자수성가도 이미 옛말이 된지 오래다. 어쩌면 탄생부터 좋은 조건의 부모를 만나려 피터지게 보이지 않는 경쟁을 치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출발선에 운이 좋아 오토바이를 탔다면 자전거도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기회 제공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출발선에 오토바이를 탄 행운만을 만끽하는 것은 의미 없는 찌질 함의 극치다. 이 찌질 함이 자신의 아이만이 왕의 DNA를 가졌다는 눈이 먼 부모를 만든다. 눈이 멀고 백치인 오토바이 왕의 DNA는 자전거를 성나게 할 뿐이다. 눈이 떠지고 분별 있는 오토바이는 자전거도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다는 자전거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 풀어헤친 쇼핑백에는 없어도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충동구매로 사들인 옷들이 초로의 나를 비웃고 있다. 어린 자전거 배달원에게 미안해지는 철없는 늙음이 후회스러운 순간이다.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자전거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갖기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가 오토바이를 넘어 차량을 소유하고 그 이상의 단계들을 성실하게 실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젊음이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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