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억 청주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부

반영억 청주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부

[동양일보]외손주를 돌보는 할머니가 계셨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았지만, 가끔 엉뚱한 일을 저질러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배우자에게 ‘아이고, 인간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인간아! 내 속 터져 죽겠다.’하곤 하였다. 딸이 있을 때도 남편 흉을 보면서 ‘그 인간이, 어쩌구 저쩌구. 그 인간이 철부지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손주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가계도’를 그리는 과제를 주었는데 나를 중심으로 엄마, 아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고 해야 하는데 ‘할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그 인간’이라고 하여 깜짝 놀랐단다.

가족구성원 안에서도 서로 존중하고 사랑의 표현을 올바로 해야 한다. 특별히 가정은 우리가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며 배우는 거룩한 학교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말을 가려서 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웃의 수많은 잘못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가장 작은 한 가지 잘못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성공하는 지름길은 이웃에게 충고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고약한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고, 덕이 많은 아주 훌륭한 사람에게도 고약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자신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잘못 가운데 가장 큰 잘못은 잘못했다는 의식조차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모든 것이 언제나 선한 것은 아니지만, 선한 것은 모두 위대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녀와 함께 밥을 먹는 이는 위대하다.

덕망이 있는 원로정치인에게 신문기자가 물었다. “지금까지 본 정치인 중에서 누가 최악입니까?” 그 정치가가 말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최악의 정치인을 찾지 못했소.” 기자가 놀라서 “그게 정말입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저 사람이 최악이다 싶은 순간, 꼭 더 나쁜 사람이 나타나더군요.”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세상에는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다.’ 고 하니 아직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 감사하다.

요즘 떠도는 소리에 마음이 가볍지 않다. “정치인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관용 없는 엄정한 대처”를 믿을 사람이 있을까? “저도 남의 집 귀한 자녀”라고 주장하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남이 띄워준다고 인기에 영합하여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너무도 가볍지 않은가? “나이 거스르는 놀라운 외모”와 마음의 결이 일치하면 좋겠다. 법정 스님의 말씀을 기억해 본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이 맑고 고요하면 말도 맑고 고요하게 나온다.” 사실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헛된 우상이나 악습,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악의 세력이다. 고집쟁이한테는 자신의 의견이 없고, 다만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설령 최악이라 하더라도 사랑받아야 할 귀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애달프고 미운 사람은 봐서 문제란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미운 사람, 고운 사람과 더불어 살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미운 것만을 가지고 힘겨워한다. 그러나 미운 것들을 통해서 고운 것의 가치를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기도 한다. 상대의 태도를 통해서 나의 마음의 깊이, 너비를 새삼스럽게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피하고 싶은 미움의 대상이 나를 성장시키는 연장이다. 더 큰 미움을 키우지 않도록 속마음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영혼의 거울이다.

우리는 수다쟁이한테는 침묵을, 너그럽지 못한 사람에게는 너그러움을, 친절하지 못한 사람한테는 친절을 배울 수 있다. 거칠게 말하는 이는 곧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빙빙 돌려 말하는 이는 남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만 바르고 부드럽게 말하는 이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렇듯 담기는 것은, 담는 그릇의 모양에 그 이름이 달라진다. 생각해 보자!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으며 어떤 것을 담고 싶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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