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청북교회 담임목사

박재필 청주청북교회 담임목사

[동양일보]우리나라 기독교에서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교회가 ‘장로교’이다. 장로교회는 1500년대 유럽종교개혁 당시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쟝 칼뱅(Jean Calvin)의 신학과 신앙노선을 따르는 교파다. 스위스 등 많은 나라에서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는 이름을 쓰고,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성공회와 달리 거의 국교처럼 장로교회라는 이름을 쓰고, 미국에서도 교인 수 자체는 회중교회나 침례교단보다는 많지 않지만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는 교파가 되었다. 스코틀랜드를 제외하고 어쩌면 한국이 세계에서 장로교회로서는 가장 많은 교인 수와 교단,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유독 장로교회가 크게 융성할 수 있었을까? 이 주제에 대해 연구된 학문적 결과들도 있고, 실제 피부로 느끼는 정서도 있다. 가장 간단하게 답을 한다면 유교적 질서인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 감정적 정서가 가장 크게 작동하는 문화다. 예전 유명한 칼럼니스트 이규태 선생은 한국인이 줄을 서는 문화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이에 있다고 보았다. 노인은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늦게 나가도 먼저 들어가거나 승차할 수 있고, 서 있으면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줄을 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정서가 교회 안으로 유입되어 연령별로 지도자가 되는 ‘장로’제도, 또는 ‘권사와 집사’ 제도 등이 우리 정서와 맞아떨어져 우리나라에서 장로교 제도가 융성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만나면 먼저 나이부터 묻는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고, 선교지 문제로 해외에 나갈 일이 참 많지만 어디에서도 나이가 얼마냐고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민이나 선교사들을 만나면 일단 과거의 호적부터 정리한다. 무슨 띠냐, 혹은 신학대학원 기수(목사안수를 받기 위해 필수로 다니는 대학원)가 몇 기냐, 목사안수를 언제 받았느냐, 이런 질문을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처럼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나보다 어리거나 기수가 늦거나 하면 반말을 하고, 나이가 많거나 기수가 높은 선배를 만나면 존대어를 쓴다. 우리는 격하게 감정이 충돌하게 되면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 “너 몇 학번이야?”, “너 몇 살이야?”로 기선을 제압하려고 시도한다.

오래 전 미국 시카고의 유명한 장로교회를 방문했을 때 담임목사는 40대 중반이었고, 우리 일행에게 교회를 안내하면서 상세히 소개한 선임행정부목사는 육십 대 초반의 목사였다. 한국교회 풍토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기존의 목회자가 은퇴하여 새로운 젊은 목회자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 그 전에 있던 나이가 많은 부목사들은 마치 당연한 듯이 사임을 하여 다른 교회로 옮겨가곤 한다. 공직, 관직도 거의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안다. 사시나 행시, 또는 임용기수가 낮은 사람이 기관의 장으로 부임하면 선배 기수는 용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비워주는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만약 사임하지 않고 버티면 조직에 누를 끼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연일 술렁인다. 나와 같은 나이의 정치인이 오십을 넘긴 장관을 향해 ‘어린×’이라고 욕을 하고, “물병을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막말을 해서 파장을 일으켰다. 무수한 정치적 기득권층들은 선수나 지역적 연고를 바탕으로 반개혁적 언사를 일삼고 있다. 나이가 능력은 아니다. 살면서 겪은 인생의 자산과 지혜를 후대에 잘 물려줄 때 아름다운 것이지 나이가 힘이 되면 그 사회는 도태한다. 제대로 나잇값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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