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선 증평공고 한문 교사

강병선 증평공고 한문 교사

[동양일보]어느 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忠(충)’이란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니?” 학생들의 대답은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은 ‘복종(服從)’의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論語(논어)’의 주석에서는 忠(충)에 대하여 ‘盡己(진기)’로 설명했으니 盡己(진기)란 ‘나의 마음을 다 하는 것’이란 뜻이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忠言(충언), 忠臣(충신) 등의 단어를 예로 들어가며 ‘복종(服從)’의 의미와 다른 점을 설명해줬다. 학생들은 모호한 표정을 보였지만 추후에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으로 남겨뒀다.

盡己(진기)는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어려운 것은 ‘마음’이라는 것의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것은 무엇일까? ‘마음’은 내가 결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절로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자고 있을 때도 꿈을 꾸는 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마음의 일종이리라. ‘자연이 우리에게 숨을 주어서 호흡하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에게 마음과 생각을 불어넣어 주는 것도 자연이 아닐까?’ 자연은 잠시도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면 1초 단위로 어떤 선택의 기회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흐르는 생각과 마음의 물길 속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생각을 부여잡는 것이다. 그렇게 잡힌 생각은 執念(집념)이라 부르며, 집(執)은 ‘잡다’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생각과 마음이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관찰하거나 음미하면서 움켜쥐지 않는다. 만약 일어나는 생각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면 마음은 재빨리 눈치채고 다른 생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執念(집념)은 ‘쥐고 있는 생각’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잡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흐르는 생각과 마음의 바닷속에서 각자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찾아 잡은 이후에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사리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개인과 사회에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할 것은 고집(固執)으로, 고집은 ‘굳게 잡다’라는 뜻이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의 성질 중에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이미 무언가를 잡았다면 그것을 놓지 않은 이상 다른 것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마음과 생각은 두 가지 이상의 선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선로로서 구성되어 있기에 하나에만 얽매여있다면 다른 종류의 생각이나 마음이 들어오는 길이 차단된다는 의미이다.

‘잡기’와 ‘놓아두기’의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잡아야 할 때는 잡을 줄 알고 놓아야 할 때는 놓을 줄 아는 것은 내 마음의 운용법이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나의 마음으로 규정한다면 마음의 범위는 협소한 것이 되어 버리지만, 아직 쥐지 않은 것도 나의 마음으로 규정한다면 마음은 실로 우주와도 같은 것이리라. 그 마음을 느끼며 ‘盡己之謂忠(진기지위충)’, 즉 ‘내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고 한다’라는 문장을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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