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동양일보]겨울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가을꽃들과 단풍, 거기에 운치를 더하는 억새며 갈대는 눈부신 찬란함을 선물한다.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인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 김치산업의 진흥과 김치 문화를 계승·발전하기 위해서 2020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대한민국 법정기념일 중 유일하게 음식이 주인공인 날인 셈이다. 우리 민족의 밥상에서 김치가 가진 위상과 의미는 그만큼 크다.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정한 것은 이맘때가 김장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이며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배추, 무, 고춧가루, 마늘 등 재료 하나하나(11)가 모여 면역력 증진, 장내 환경개선, 비만·노화 방지, 항산화 및 항암효과 등 22가지 효능을 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입동과 소설이 지나면 각 가정에서는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가야 하기에 마음이 바빠진다. 배추김치, 백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등. 김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음식 문화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김치를 많이 먹지 않는다지만 아직 까지는 김장이 겨울 양식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웃들 간에 김장하셨어요? 라는 인사가 정겹다. 김장하면 일 년 숙제를 다 해놓은 뿌듯함이 느껴지고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바쁜 와중에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김장할 수 있다면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일 터. 복지관도 이맘때가 되면 봉사자와 직원들과 함께 바깥에서 천막치고 김장김치 담그는 일이 큰 행사다. 이용하시는 회원님들도 우리가 다 같이 먹을 겨울 양식이니 함께 하겠다고 너나없이 손을 걷고 참여하신다. 뜨끈하게 끓인 생강차를 호호 불며 나눠 마시고 김치의 간을 맞춰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 풍경이다. 주민센터에서도 봉사단체에서도 김장김치 나눔을 위해 많은분들이 기꺼이 힘을 보태는 모습에 아직 우리 사회는 살만하다. 갈수록 퍽퍽해지는 세상살이에 겨울 김장김치 나눔은 주변을 따뜻하게 한다. 이웃에서 김장했다고 정성스레 담근 김치를 가져오셨다. 감사의 마음으로 맛나게 나눠 먹었다.

마을에 혼자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김장김치를 나눠 드리는 일은 정을 나누는 참 좋은 일이다. 더 좋은 일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동네 경로당 같은 곳에 함께 모여 오순도순 각자의 김장도 하고 경로당에 못 나오신 분들 김장도 해서 나누는 것이다. 아울러 경로당 김장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분들은 이미 김장 고수들이 아니신가. 번거롭긴 하겠지만 봉사단체에서 절인 배추와 양념을 준비해 드리고 함께 버무리면서 서로의 안부도 확인하고 옛이야기도 나누고.

나이가 들면 음식섭취량도 줄고 소화력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여럿이 식사하면 혼자 먹는 밥보다 맛있다. 그래서 경로당에서 먹는 밥맛은 꿀맛이란다. 주변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드리면 수혜자라는 생각보다 우리가 함께 만들고 나눈다는 마음이 된다. 일상에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삶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몫은 아니다. 그렇게 이웃들이 함께하는 것이다.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자도 없다는 말이 있다. 추운 계절이다. 우리 주변에는 몸도 춥지만 마음의 추위를 더 크게 느끼는 분들이 많다. 주위에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 독거 어르신과 고령의 장애인,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 병마로 고생하시는 분들 모두가 마음이 더 추운 분들이다. 제도적 한계로 사회적 지원과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자.

현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 아닐까 싶다. 외로움은 마음의 병을 얻게 한다. 마음의 병은 절망으로 빠져들게 하며 크고 작은 상처로 움츠러들게 한다. 겨울이 시작되는 이 시기에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다정함이 필요하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때 오늘의 작은 위로가 위안이 되고 내일을 견디는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정한 눈빛과 인사를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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