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수필가

박경희 수필가

[동양일보] 서울에 사는 손녀 재은이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만나면 즐겁고 언제나 보고 싶은 손녀다. 자식들 키울 때 몰랐던 애틋함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봐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이를 못 알아볼 리 없는 손녀도 이 할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할머니!" 부르며 달려와 품에 안겨 나의 주름진 뺨에 자신의 볼을 부벼 댄다. 손녀와 애정 어린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남편 표정에도 달큰한 흐뭇함이 녹아있다.

어린 손녀와 순수한 친밀감을 나누는 그 시간이야말로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는, 가장 짜릿한 순간이 아닐지. 종종 예원,재은이 두 손주들과 함께 웃고 먹고 놀아주며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손녀 재은이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도 친근했다. 봄이면 할아버지 시골집을 찾아 화단을 가꾸고, 농장에 작은 텃밭을 같이 돌본다.

작은 밭이지만 상추를 기르고, 부추와 고추를 심는다. 토마토도 기른다. 찾아 올 어린 손녀들을 위해서다. 아직 남은 봄이 있으니, 우선 손녀의 화단을 정리해야겠다. 손녀가 손수 꽃을 사다 심고, 물을 주어 가꾸는 작은 화단이다. 무상으로 무기한 대여한 손녀의 화단에 푸르름이 찾아왔다.

유치원에 다니던 재은이가 어느날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 저 땅 조금만 주실래요? 제가 오늘 유치원에서 팥으로 만들기를 하고 남아 2톨을 가져왔는데, 할아버지가 제게 땅을 좀 주시면 심으려고요.”

어린 손녀의 말하는 솜씨에 깜짝 놀란다. 세월은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가끔 주고받는 전화가 반갑고 고맙기도 하지만, 아이가 구사하는 말솜씨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세월의 변화와 세대 차이를 넉넉히 알려주는 손녀다. 삶의 방식이 변했고,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다. 참으로 경이롭고 사랑스럽다. 손녀와 자주 통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녀와 이야기가 별 것 있겠는가? 커가는 모습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기다려지는 손녀의 전화다.

주말에 손녀는 제 어미와 시골집을 찾아 통통한 팥 두 알을 할아버지 텃밭에 정성들여 심었다. 얼마 지나 그 붉은 팥꼬투리는 100개도 넘게 달려 툭툭! 터지는 소리에 가족 모두를 즐겁게 했다.

1950년대생 할아버지와 2010년대생 손녀가 6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노래로 같이 즐거워하고 서로 통하게 되는 참 귀한 장면이기도 하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 아래 보낸 이 시간들은 아마도 먼 훗날 손녀들에게 지극한 사랑으로 생생히 간직될 귀한 선물임이 분명하다.

길가의 개망초를 보고 "할머니, 달걀 프라이 꽃이에요~!" 질경이를 뜯어서는 고리 걸고 힘겨루기도 하고, 토끼풀 꽃을 뜯어 팔찌와 반지를 만들어 치장도 한다. "할머니~ 사랑해요" 하고 총총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 있을까? 아이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예쁘고 고마워서, 나는 오늘도 손녀가 좋아하는 딸기를 듬뿍 준비해 둔다. 손녀바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 모든 아이가 그렇지만 천진난만한 웃음이 절로 행복한 마소를 짓게 하는 사랑스러운 손녀 예원이와 재은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들! 내 고운 아가들아, 사랑하고 축복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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