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원정 출산' '서울 안 가면 병 못 고친다'는 슬픈 말들. 첨단 의료시설과 최고 의료진의 인프라를 갖춘 대한민국에서 듣기에는 참 민망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지난 6월 경기도 용인에서는 차에 치인 70대 노인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숨졌다. 당시 119 구급대가 치료를 요청한 병원은 모두 12곳이었는데 모두 퇴짜 맞았다.

올해 3월 대구에서도 건물에서 떨어진 10대 여학생이 병원 8곳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모두 응급의료진 부족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 외에도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의료 인력 부족은 국가적 난제다.

해답은 간단하다. 의사 숫자를 늘리면 된다. 그런데 이걸 못하고 있다. 현직 의사들이 국민 고통과 불편을 외면하면서 ‘밥그릇’ 줄어들까봐 격렬하게 반대해서다.

의사를 배출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는 절박한 상황인데도 의대 정원 확대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최근에 의사 숫자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전국 40개 의대를 상대로 입학증원 수요조사 결과를 내놓자 대한의사협회가 기다렸다는 듯 총파업 카드를 들고 나오며 위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때도 의대 정원 400명 늘리려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과 의대생들의 극한 반발로 무산됐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의사들의 지나친 이기주의와 저항 태도를 언제까지 지켜보고 달래줘야만 하는지 참 답답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2.6명(2021년 기준)인데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보다 훨씬 낮다. 그나마 서울은 조금 나은 편인데 이 말은 거꾸로 지방의료 현실이 황폐화 돼 있다는 것과 같다.

의료계 의견 중 인구감소로 환자가 줄어드는 상황에 의사 숫자를 늘리는건 맞지 않다는 내용도 있는걸로 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의사를 ‘한시적’으로 늘렸다가 5년쯤 후에 정원 감축 등의 방법으로 재조정 하면 된다.

또 인구 감소는 어차피 지켜만 보고 있을 일이 아닌 재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인구감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일도 아니다.

어쨌든 의사 숫자를 늘리는 일에 여야와 정부는 합리적 방안을 찾아 의료계를 설득해 주기 바란다.

보건의료노조가 공개한 의사 인력 확충에 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2.7%('매우 필요하다' 57.7%, '필요하다' 25.0%)가 “그렇다”고 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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