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호 오뉴월 대표

서준호 오뉴월 대표

[동양일보]지난 달 나는 미술 시장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을 빌어 현대미술의 자율성이 기성품이라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것. 그리고 현대미술은 자본주의를 전제로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술가의 일생이 신화가 되고 그 신화는 결국 시장의 평가로 치환된다. 한국 경제 상황은 아주 빠르게 변화해왔다.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고 자본주의가 고도화 되어 K-Pop이나 K-Drama, 영화 등은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 미술 상황 또한 한국이 변화하는 만큼 급격히 변해왔다. 매년 4000억 원 내외였던 미술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유례없는 규모로 확장됐고 해외 유수의 아트페어도 개최되어 무성한 소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경기는 둔화되고 침체기로 접어 들고 있다. 미술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과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나 한산한 분위기다, 지난 5월과 9월에 열린 아트부산과 키아프는 성과에 대해 늘 자랑하듯 보도자료를 뿌렸지만 올해는 조용했다. 2024년엔 정부 기금도 개인의 창작 지원 대신 미술 기관들의 행사 지원으로 변화한다고 하고 각 지자체도 문화예술 예산을 삭감한다고 해 각 기관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지자체나 미술관 등 기관들이 주관하는 미술 행사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고 시장과 다른 노선을 걷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들의 전시가 돋보인다. 청주 또한 코로나 기간 문을 연 여러 전시장들에서 활발하게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시장에서 소외 받던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시 기를 펴듯 선보이고 있는 느낌이다. 미술 시장이 활황이어도 현대미술 작가들은 언제나 소외되었었고 경제적으로 좋았던 적은 내가 미술 일을 시작한 20년 간 없었다.

최근 안나 웨이언트 Anna Weyant 라는 작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1995년생인 이 캐나다 출신 작가의 작품이 160만 달러에 판매되었단다. 2019년, 2020년만해도 400달러, 좀 큰 그림은 2000달러, 3000달러로 한국 청년 작가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그녀였지만 한 순간에 인생 역전하듯 작품이 하이엔드 마켓에 진입했다. 그 이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세계최고의 아트딜러라고 불리는 래리 가고시안 Larry Gagosian(1945~)의 여자 친구기 때문이라는데, 출중한 외모를 가진 작가의 작품은 플랑드르의 정물화, 인물화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적으로 제해석한 것들로 작품 자체도 나쁘지는 않지만 만 스물여덟 살 작가의 작품이 20억 원이 된 이유는 남자 친구를 빼고는 설명 할 수 없는 듯하다. 손녀 딸 뻘인 작가와 전용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 이 커플은 최근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러한 미술계의 가려진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는데 아만다 사이프리도가 조연으로 출여하는 ‘부기우기 Boogie Woogie’가 그것이다. 몬드리안이 기하 추상 작업 조반에 제작한 부기우기라는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갤러리와 콜렉터, 작가와의 관계를 과장되었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자본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뒤섞이면서 예술에 투사되는 지 잘 보여준다. 물론 현실이 다 그렇지 만은 아닐 것임을 믿는다. 또 한 편의 영화는 ‘프라이스 오브 에브리씽 Price of Every Thing’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어떻게 미국 미술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게 되었는지 현재의 미국 미술 시장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한국의 미술 상황도 어떻게 흘러갈지를 가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나 웨이언트를 보면서 결국 예술도 자본도 살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은 당연히 60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 평가 이전에 시장 가격으로 가치를 매겨 버린 상황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 미술은 가치롭다고 여겨지는 살아있는 사람이 만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몇 안되는 대상 중 하나다. 예술 작품은 가치롭기에 비싸진다고 생각하지만 비싸기 때문에 가치를 가지게 되는 이 상황은 결국 예술도 어떻게 보면 투자, 투기와 욕망이 뒤얽혀 만드는 영화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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