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동양일보]연말이 되면 자주 주고받는 말 중의 하나가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처럼 마무리가 중요하다. 연말에 주고받는 덕담으로 ‘잘’ 마무리하라는 말은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기업의 회계연도 결산과는 ‘마무리’의 의미가 사뭇 달라야 한다. 기업의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처럼 한 해 동안의 삶의 궤적을 수치로 표시하여 정확한 값을 매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12월이 되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다 이룬 목표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자책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충분히 잘 살아왔음에도, 습관처럼 자신이 설정한 성적표를 곱씹으며 쓸데없는 연민에 빠져 귀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상대방과의 비교 우위를 위한 경쟁의식과 결과 위주의 성과주의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시간을 정해 놓고 승패를 가르는 ‘바둑’에서조차,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인생사에 빗대어, 초반 포석(布石)에 대해서는 어떻게 두든 ‘한판의 바둑’이라고 눙쳐 얘기하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살아온 날들이, 그리고 살아갈 날들이 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 하물며 한 치 앞을 모르는 존재로서 생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내 마치 스포츠경기처럼 승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무게를 자로 잴 수 없듯이, 한 해를 돌아보는 관점의 차이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이번 주부터 성탄까지가 가톨릭 전례력으로 ’대림시기(待臨時期)‘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聖誕‘ 전(前) 4주간을 말한다. 교회는 11월, 지난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추수 감사 미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이번 주 대림 제1주일부터 새해 첫날을 맞는다.

’구속강생(救贖降生)‘의 교리에 비추어 보면,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희망의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에게 12월은 성탄을 열망하고 준비하는 감사와 희망의 시기다.

‘대림(待臨)’이라는 희망의 단어를 우리의 삶 속에 빌려와 보자. ‘대림’은 '오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으로, '도착'을 뜻하는 라틴어 '앗벤투스'(Adventus)에서 유래했다.

연말을 맞는 상황과 마음가짐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면, 12월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답이 나올 것이다. 12월이 세월의 덧없음이나 내세우고, 이루지 못한 성과에 연연하여 아쉬움만 토로해선 안 된다. 결괏값으로 나타나는 결산의 수치가 마치 정의인 것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목표지향적이 돼서도 곤란하다. ‘꿩 잡는 게 매‘ 아니냔 식의 삭막한 성과 논리에 밀려 삶의 의미가 가려지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하루하루의 삶에서 아무런 기대도 없고 의미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열정이 식어버린 삶이다.

무엇에 감사하고 만족할 무엇을 찾는 것은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 해 잘 살아왔다는 자각과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여유만 있으면 된다. 12월에 잔뜩 몰려있는 연말 행사도 지레 손사래 칠 것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임해보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상황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반가워야 모임이고, 즐거워야 행사다‘. 넉넉한 마음으로 즐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지난달, 세 차례 짧은 나들이를 다녀왔다. 친구들과 한 차례, 그리고 모임에서 두 차례, 여행목적이나 성격은 각기 달랐지만 공통된 화두로 다가온 것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었다.

남은 생의 목표처럼, 여행 중에 큰 깨달음처럼 다가온 감상이다. 올 12월, 대림시기에 자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12월이 아쉬움 속에 떠나보내야 하는 헛헛한 세월이 아닌, 감사와 보람으로 가득한 연말이 되길 희망한다.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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