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박사과정 시절 돈이 급하게 필요해서 어떤 일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던 적이 있다. 몇 십만 원에 불과한 돈이었지만 학비며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하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기에 그 일을 덥썩 맡았다. 공부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오지랖 너른 일로 이미 무척 바빴지만 시간을 쪼개어 그 일을 했다. 한여름을 통과하는 몇 달 동안 다른 건 하나도 하지 못한 채 그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보수는 5년도 넘은 후에야 받을 수 있었다. 이미 고생은 할대로 다 하고 난 뒤였다. 취직하여 월급을 받는 처지였을 때 그 돈을 보낸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걸 읽으며 묘한 감정에 빠졌었다. 기쁘거나 반가운 감정은 결코 아니었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를 어렵게 지났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때 그 적은 돈을 받게 되리라는 소식은 잊고 있던 서운함 같은 걸 일깨웠다. 그것이 늦어진 이유로는 일을 제안한 사람이 지연시킨 것이 컸고, 그것이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또 오래 걸렸던 것도 있었다.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에 컸던 것이 이제 작은 것이 되어, 아니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어느 날 데굴데굴 굴러온 것 같았다.

한 때는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의미가 없어지는 건 돈만은 아니다. 돈이든 마음이든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건 보살핌이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필요가 사라진 때에 뒤늦게 도착하는 도움은, 물질이든 마음이든 억지가 될 수 있다.

자녀가 어릴 때 잘 돌보아 주지 못한 걸 미안해 하는 동료가 사춘기에 달한 자녀에게 쩔쩔매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자녀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였는데도 어머니와 어른에게 막 대하고 불손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자녀의 뜻을 뭐든지 맞춰주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상하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했어야 할 무조건적인 지지를 어릴 때 하지 않고, 사리분별을 해야 할 아이에게 무조건 뜻을 받아주는 게 자녀에게 도움이 될까 마음 속으로 걱정했다. 아이가 그렇게 대하는 어머니에게 고마워할지도 의문이었다.

똥싸고 울고 때쓰며 말이 안 통하던 시절을 인간은 누구나 거쳐서 자라난다. 그래도 예쁘다고 토닥여주고 눈맞추며 웃어준 어른들 덕에 스스로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며 자라난다. 그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마음의 힘이 되지 않을까. 아이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사람을 믿고 온체중을 실어 그 어른에게 안기고 꾸밈없는 밝은 웃음을 보여준다. 돌봄에 생존을 의탁하던 어린 시절에 자신을 돌보아주는 사람에게가 아니라면 인간의 일생에 이런 정도의 절대적 신뢰와 사랑이 다시 있을까 싶다. 인간이 자신의 몸을 이토록 완벽하게 맡긴 채 안기고 전혀 꾸밈없는 웃음을 웃어주는 때. 이런 건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는 보살핌을 해 준 어른만이 받을 수 있는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다.

평생 자식을 위해 돈을 벌었어도 아이는 그걸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희생은 나중에 크고 나서 관념적으로만 알게 된다. 아빠가 너희들 위해 고생 많이 하셨어, 라는 엄마의 설득을 통해서다. 무섭고 엄하고 그나마 잘 마주한 적도 없는 아버지에게 정이 쌓이긴 어렵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다 제 엄마 편만 들게 된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관념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도 어린 시절에 보여주었을 그 절대적 포옹과 웃음은 아이의 유년시절과 함께 지나가 버렸다.

인간은 젖먹이 어린 시절,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한다. 어릴 때 보살펴 주는 사람에게 가장 깊고 전적인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똥싸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안고 먹이고 재우는 직접적인 보살핌(wet nursing)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보상이다. 아버지 육아휴직, 일생활양립은 남성의 권리이기도 하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