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큰언니는 아침만 잡수면 쇵현아저씨 댁으로 간다. ‘쇵현아저씨’ 라 했거니와 원래는 송현아저씨다. 그 아주머니가 송현동에서 시집와서 택호가 송현댁이어서 그 신랑 되는 이를 송현아저씨라 부르는 것인데 동네서는 그냥 쇵현아저씨라 하는 것이다. 진천 이월면 송현동 하면, 우리 큰어머니가 이 송현동에서 우리 아버님께로 시집와서 우리 아버님을 남들이 칭할 때 ‘송현양반’ 이라고 하였는데 그 송현을 이르는 것으로 우리 큰언니에겐 아버님의 택호로서 낯에 익을 뿐 아니라 이 쇵현아저씨와는 독특한 인연의 사람이었다. 이 송현아주머니가 이 송현아저씨께 시집와서 안 사실이지만 송현아저씨가 성 불구자였다. 키가 바지랑대처럼 큰 양반이 얼굴에 수염자국이 없어 매끈한 얼굴에다가 마음씨 또한 양순해서 신랑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인데, 내가 남자가 성 불구자라 해서 팽개치면 이 사람은 영 장가는 못 갈 것 같고, 용모가 걸출하고 마음씨 착한 이 남자를 외면하면 두고두고 마음이 언짢을 것 같아서, 내 이 한 몸 희생하여 이 남자를 구하고 이 집안을 지켜보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는 거다. 그래서 애가 없어도 알콩달콩 두 내외가 같이 잘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큰언니라,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는 큰언니는, 아버님이 비록 어머니가 아홉의 딸만을 낳고 단산하여 자신을 어려서 양자로 삼아 장가까지 들여놓고 일 년 만에 자살한 며느릴 보고 그제야 양자 온 자식이 성 불구자라는 것을 알고도 파양은커녕 팽개치지 않고 데리고 살면서, 참판 집으로 입양온처지에 대를 잇기 위해 할 수없이 40대의 두 번째 부인을 본 것이다. (큰어니와 두 번째 부인, 즉 내 어머니와의 나이 차이는 큰언니가 4살이 더 많다.) 이 쇵현아저씨와 쇵현아주머니와의 사실을 잘 아는 큰언니는 그래서 아침 식사를 마치면 이웃인 이 쇵현아저씨 네로 내닫는 것이다. 그걸 보고 엄마는, “쇵현아저씨와 같이 사는 쇵현아주머니가 큰언니에게 잘 하는 모양여.” “왜 그렇게 잘 해. 피란 온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를 텐데?” “큰언니 고향이 요 곤재서 얼마 안돼잖어. 고향 올 때마다 들르는 모양여.” “창연네 집에 올 때마다?” “아냐 쇵현아저씨 집에.” “왜?” “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잘해주니까.” “ 뭘 잘해줘?” “큰언니와 쇵현아저씨가 같으니까 두 내외분이 그러나 보지.” “뭐가 같애?” 엄마는 재봉틀에서 손을 떼고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나서, “넌 알 필요 없어. 차차 일게 돼.” 하는 거였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묻지 않았으나 큰언니와 쇵현아저씨가 같다는 게 궁금했다. 쇵현아주머니는 우리 어린 형제에게 참 잘해 주었다. 큰언니에게 점심잡수시라고 그 집에 가면, “여기서 잡수녔어.” 그리곤 부엌으로 우리를 손을 잡고 가서 고구마와 감자를 솥에서 꺼내 준다. 그리고 어떤 땐 밀가루개떡을 줄때도 있었다. 여하튼 그대로 보내지 않는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하면, “그 쇵현아주머니 참 자상도 하셔. 너희 같은 애들을 보면 참 잘하셔. 뭘 못줘서 안달을 하셔. 아침저녁으로 들르는 거지도 그냥 보내질 않는다고 소문이 나있는 분이셔. 너희도 잘해 드려.” 내가 허벅지에 가래톳이 나 아파서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큰언니가 쇵현아저씨를 데리고 왔다. ‘가래톳’ 이란 허벅지와 잠지 사이에 나는 종기를 말하는데 켕기면서 아픈 병이다. 그 쇵현이저씨가 내 가래톳을 보더니, “많이 붰구먼.” 하고는 창문 밖을 보고 있는 시늉으로 나의 시선을 뺏어서는 어는 틈에 뾰족한 침 같은 것으로 그 종기의 고름 엉겨있는 데를 찔러 고름을 빼고 있는 거다. 순식간이었다. 그러면서 입에 웃음을 물고는 일어서며, “내일이믄 행결 부드러워질 거여.” 했다. 정말로 이튿날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 가래톳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그때의 쇵현아쩌씨의 빙그레 웃는 얼굴과 말씀하신 태도를 지금까지도 잊혀 지질 않는다. 그리고 나의 환부를 보고 안쓰러워하던 큰언니의 얼굴표정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엄마의 말도 상각난다. “그 쇵현아저씨 아녔으면 얼마나 네가 고생을 했겠니. 참 그 양반 쇵현아주머니를 만나 복 받은 사람여.” 그 후 난 큰언니와 쇵현아저씨가 같은 처지라는 걸 이해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