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문학평론가

김주희 문학평론가

[동양일보]겨울, 성탄절 앞둔 세상이 휘황하다. 풍경 심심한 단색계절에도 불빛이 흔연이다. 도시는 통행 많은 네거리쯤에 장식 트리를 설치하고 점등식을 한다.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 반짝 불들어오는 걸 보려고 사람이 모이는 일은 얼마나 동화적인지. 시절에 맞춰 가게들은 널따란 창에 장식을 더하며 들어오라고 지나는 이들을 초대하고, 음식점 계산대 주변도 반짝이는 오르골이 유년 놀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간다. 건물들에 반짝이 조명들이 내걸리고, 아파트 정원에도 눈사람 구조물이 놓인다. 장식된 풍경마다 웃음기같은 생기가 더해진다.

달력이 연말을 향하면 이 무렵 시간은 한결 의미 있어 지는지. 이때를 빌어 전하는 선물은 위선이어도 진심이어도 좋겠다. 악한 행위 하면서 선한 의도 붙여 포장하는 위악에 비한다면 위선은 차라리 아름다울지, 위선은 행실을 착하게 한 뒤 진심을 담아 행했는지 묻는 일 아닌가. 착한 행실에 의도까지 착하면 좋을 테지만 사람이 그렇게까지 늘 맑기야 어디 쉬운가 싶기도 하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기로 했다는 성탄이야기는 실은 낯설다. 사람이 신이 되거나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성장담과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오랜 예언, 사람을 사랑하므로 무력한 사람의 자리로 신이 내려온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낯익으면서 낯설다. 신이 굳이 인간이 되셔야 했을까, 그것도 어린아이가 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강력함을 모두 무장해제 해버리고 사람에게 자기 운명을 온통 맡겨버리는 양상이라니. 인간에게 자기의 한 자락을 거는 신, 사람이 때로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까지도 아시면서 어째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참 신비하시다. 부활이야기는 오히려 이해가 쉽다. 신이라면 죽은 이를 살리고, 삼십팔년쯤 앓던 이를 고치고, 물 위를 걷는 일 같은 건 오히려 쉽지 않으려나. 가진 힘 쓰면 되니 신이라면 그쯤은 하시지 않겠나. 사람은 어려워도 하나님이라면 당연히 하실 수 있으려니. 그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가장 무력한 모습으로 태어나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일 터이다.

주일학교 다니던 유년 시절, 교회학교 선생님은 말씀했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우리 같은 사람으로 우리 곁에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셨다고.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다고도.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존중하신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과 신이 사람을 존중하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신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건 부려먹거나 함부로 하기 위해 만들지 않았다는 걸 넘어 세상 누구도 신이 아끼는 존재이니 누구도 함부로 해서 안된다는 선언이다. 신이 아끼는 존재인 사람끼리 마구잡이로 대하는 건 우리의 겁 없는 타락이겠다. 하여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건 존중의 방식이다. 신은 사람의 선택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뻐한다. 사람에 대한 이 존중이 신의 거룩하심일 터. 거룩은 때로 세상 기준과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려니. 사람도 거룩해질 수 있을까. 제 가진 힘을 남과 함께 쓰려는 때야말로 신의 성품을 흉내내는 거룩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탄절을 맞이해 장식하고 등 매달아 반짝이게 하는 일처럼 시들해진 마음이 반짝 물기 있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거듭난 증거라도 되듯 서로 남은 시간을 애틋하게 격려해주는 그런 일. 지즐대는 물소리처럼 맑고 기쁘게 반짝이며 흐르면서, 앞 뒤 함께 흐르는 물살들 거들기도 하면서 긍휼로 연대하듯 아까운 목숨들 안쓰러이 대하는 착한 시간들을 함께 보낸다면. 자꾸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더 좋은 사람 되는 일까지 더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을 한 자락 닮게 되는 기적같은 그 일이 이번 크리스마스에 더 진하게 실현된다면 그러면 전세계의 전쟁 따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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