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선규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충북한의사회 정책기획이사

염선규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충북한의사회 정책기획이사

[동양일보]며칠 반팔 반바지를 입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날씨였다. 13일 아침 기온이 전날보다 5~10도 가량 떨어진데다 출근길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체감온도가 내려갔다. 이번 주말부터는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한파특보 가능성이 예보됐다. 질병관리청도 지난 12월 1일을 기준으로 전국 500여개 의료기관 응급실과 함께 2월 말까지 한랭질환 감시체계에 본격 돌입했다.

한랭(寒冷)질환이란 말 그대로 추위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질환을 말한다. 전년도 한랭질환 감시체계 운영결과, 총 447명(사망 12명)이 한랭질환으로 고통을 겪었는데 이는 그 전년도보다 49%나 증가한 수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작년에 찬 북서풍 고기압이 오랜 기간 한반도 상공에 머물렀기 때문인데, 더 큰 문제는 작년보다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상이다.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에는 추위로 인해 근육이나 인대가 수축하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 하여 만성질환자, 노약자 등은 저체온증, 동상에 더 취약해지고 심근경색, 부정맥, 뇌졸중의 위험도 높아진다. 아울러 일명 동창이라 불리기도 하는 한랭두드러기, 독감 등 호흡기 질환에 노출될 위험성도 증가하고 팔, 다리, 목, 허리, 무릎, 어깨 등 각종 근골격계 통증도 더 심해진다. 실제 전년도에 응급실을 찾은 이의 약 70%가 저체온증이었는데, 이 중 80세 이상이 20%를 훌쩍 넘어섰고 사망자의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가진 만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즉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위험도도 증가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원인을 과로, 과음,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기력이 쇠한다는 ‘기허(氣虛)’, 마치 빈혈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혈허(血虛), 수승화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진액이 고갈되는 ‘음허(陰虛)’, 겨울철 체온저하 등 냉기로 인해 나타나는 ‘양허(陽虛)’ 등으로 본다. 대부분의 증상은 기허-혈허-음허-양허의 순서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양허의 위험에 처하기 쉬운 겨울은 필히 조심해야 하는 계절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의학에서는 한랭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한약, 침, 뜸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는데, 대부분은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면역력과 체력을 키워 자연치유능력을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보통 기허엔 쌍화탕, 보증익기탕, 사군자탕, 혈허엔 사물탕, 인삼영양탕, 음허엔 자음강화탕, 육미지황탕, 양허엔 십전대보탕 등을 처방한자. 이는 위로 뜨기 쉬운 열기(火)는 아래로 내리고 아래로 가라앉기 쉬운 냉기(水)는 위로 올려 인체가 조화롭고 활기차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보면 된다. 예로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머리는 차고 발은 따뜻하게 해야한다(頭寒足熱)는 말도 같은 이치다.

다만 겨울철엔 아예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엄청난 한파라면 모를까 적당한 운동은 적극 권장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보온’과 ‘보습’이다. 갑자기 땀을 흘리고 나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쉽고 충분한 수분섭취가 안되면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은 물론 혈액 점성이 높아져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늘어난다. 그래서 온도 변화에 둔감해지고 탈수 현상을 불러오기 쉬운 과음을 겨울엔 더더욱 피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전년도 한랭질환자의 20%(88명)이 음주상태였다고 한다. 건강하게 겨울을 이겨내길 원한다면, 다시 한 번 보온, 보습 그리고 절주를 꼭 기억하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