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

[동양일보]올 한해에는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특히 ‘묻지마범죄’,‘사이코패스’,‘흉기난동’등의 연이은 강력범죄는 대한민국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전반적인 정부의 부실대응으로 인해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최고조로 높았던 한 해로 평가된다.

우선 발단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였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좁은 골목에서 발생한 압사사고는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참사 이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관계법령을 개정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관계부처인 경찰청도 인파관리와 사회재난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다양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이태원 참사 피해자 등에 대한 보상·지원책을 담은 ‘10·29 이태원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였다.

올 해는 자연재해의 피해도 심각했다. 2023년 2월에는 충남 홍성과 금산 등에서 발생한 산불로 325억원의 피해가 발생하였고, 4월에는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축구장 면정(0.714ha)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ha가 소실되는 등 대규모 산불 피해도 발생하였다.

특히 7월 15일에는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 있는 궁평 제2지하차도가 침수되어 1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자연재해이지만, 관계기관이 제대로 예방하고 대응하지 못한 사고였기 때문에 인재(人災)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을 불안에 떨게한 범죄도 발생하였다. 5월 26일 부산에서는 정유정이 자신과 연고도 없는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여 유기한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후 연이어 강력범죄가 발생하였다.

7월 21일에는 조선이 서울 신림역 4번 출구 근처 골목 및 지상 주차장에서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에게 부상을 입힌 칼부림 사건이 발생하였다.

8월 3일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의 AK플라자 분당점에서 최원종이 차량을 인도를 향해 돌진시켜 사상자를 낸 뒤 주변 행인에게 칼부림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한다. 총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중 뇌사에 빠졌던 60대 남성과 20대 여성은 끝내 사망하였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과 서현역 칼부림 사건 이후 묻지마 범죄 예고 등 모방범죄도 심각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특정 장소에서 칼부림을 하거나 살인을 예고하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며, 시민의 불안감은 날로 커졌고, 경찰 등 관련부처에서는 경찰특공대와 장갑차를 도심지에 배치하는 등 테러에 준하는 대응으로 사태를 겨우 막을 수 있었다.

8월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관악산 생태공원 둘레길에서는 최윤종이 일면식 없는 30대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을 시도하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백주대낮에 시민의 발길이 잦고 사방이 노출된 공원에서 발생해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범행 현장은 주거 지역 한복판에 있는 공원에서 샛길로 이어지는 산중턱에 있었고, 초등학교 두 곳과 100m도 떨어지지 않았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밤 8시에서 새벽 4시 사이의 범죄가 전체 성폭력 범죄의 42%를 차지하고 있고, 오전9시부터 정오까지의 범죄는 전체의 10% 미만이다. 또한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성범죄 발생 빈도가 높은데, 이 사건은 오전 11시 34분경에 발생하였다. 즉 해가 가장 밝은 대낮에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야간에 많이 발생하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유명 연예인을 포함한 마약류 범죄도 끊이지 않았다. 유엔(UN)의 마약청정국 기준은 인구 10만 명당 20명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2016년 10만 명당 25명을 기록한 이후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2022년에 검거된 마약사범 수는 18,395명으로 2017년 대비 30.3%가 증가했으며,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은 35.63명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통계에 의해서도 우리나라는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한지 오래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오히려 새로운 마약의 신흥시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앞의 사건들보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전세사기, 보이스피싱사기 범죄 등 경제범죄도 국민을 힘들게 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올 한해 언론과 SNS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들은, ‘사이코패스, 현재는 이상동기범죄로 명명한 묻지마범죄, 흉기난동 등’이었으며, 이에 대응한 단어들은 ‘각자도생, 호신술, 호신용품’ 등 이었다. 결국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내용이 반영된 단어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자영업은 폐업률이 증가하는 등 민생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시점에서 국민의 안전마저 위협받는 다면,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꼴지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1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 나라에서 인구 절벽 벼랑 끝에 선 대한민국이다.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내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안전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태원 참사 이후 현재까지 대형인명피해가 발생한 인파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신림역과 서현역 등 이상동기범죄와 모방범죄는 지금 현재 전무하다. 결국 사회안전의 확보는 관계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2023년의 대한민국의 안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였다.

1920년대에 미국 한 여행 보험 회사의 관리자였던 허버트 W.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는 7만 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 아주 흥미로운 법칙을 하나 발견한다. 그가 말한 ‘하인리히 법칙’이란 1:29:300 법칙이라고 불리우며, 산업재해 중에서도 큰 재해가 발생했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고, 또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인리히 법칙은 말한다. 범죄든 재난이든 문제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초기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사소한 실수가 큰 사고를 야기하고, 작은 사고 하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연쇄적인 사고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24년 새해에는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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