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지난 12월 8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1월 16일 실시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채점 결과를 수험생에게 통지했다. 올해 수능은 대통령이 직접 킬러문항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던 유래 없는 수능이었다. 그에 따라 쉬운 수능이 전망되었지만 결과는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채점결과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150점으로 이는 지난 2023학년도 수능 국어에 비해 16점 상승한 것이다. 수학 표준점수 역시 지난해 대비 3점 상승하였고 절대평가인 영어는 1등급 비율이 4.7%에 불과했고 이는 수능 영어에 절대평가가 도입된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올해 수능이 치러진 직후 EBS 현장교사단에서는 킬러문항은 확실히 배제됐지만 선지의 세심함과 정교함을 통해 실질적인 사고력 측정과 함께 변별력을 확보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채점 결과상에 나타난 결과도 변별력 확보라는 분석과 일치했지만 수험생들과 교육관계자들이 체감한 수능 난이도 상승의 원인이 사실상의 킬러문항 때문인지 아니면 선지의 세심함과 정교함 때문인지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킬러문항과 불수능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 될 것이다. 상당수의 수험생들과 교육 현장 관계자들은 킬러문항 배제라는 정부 발표를 쉬운 수능으로 이해한 듯하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킬러문항은 교육부가 정의한 대로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이다. 이와 같은 정의로 봤을 때 킬러문항 배제가 쉬운 수능의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즉,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변별력 있는 시험이 가능하다는 것이기는 하나 결국 킬러문항 배제를 이와 같이 문자 그대로 이해한 이들이 몇이나 될지는 모를 일이다.

비록 수능이 말 그대로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지만 현실에서는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으로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줄 세우기 시험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각에서는 독일의 아비투어(Abitur)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와 같은 보다 깊이 있고 교육학적 원리에 충실한 대입 수학능력 평가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입학시험이 소위 선진적이라고 해도 수능을 포함한 각 나라별 제도는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그 나라의 좋은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좋게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즉, 한국인들은 유사 이래로 아무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하더라고 ‘공정’하다는 확신이 있으면 기꺼이 그 경쟁을 받아들여 왔다. 특히 입시에서의 공정성은 입시에 대한 그 어떤 가치보다 선행한다고 하겠다. 비록 군사정권 시절인 5공화국 때 시행된 ‘대입학력고사’가 너무나 많은 교과목과 단순 암기식 지식을 측정하는 전근대적인 평가제도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역대 대입 평가제도 중에서 학력고사 제도가 기계적인 공정성이 가장 높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대입 선발에 있어서도 일부에서는 수시전형 보다는 수능에 의한 정시전형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는 수시보다는 정시의 기준이 되는 수능이 보다 공정한 평가도구라는 믿음 때문이다.

킬러문항 배제와 관련하여 교육 관계자들이 완전하게 이를 수긍하지 못했지만 사회전반적으로는 사교육의 상당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에 이미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판단한다.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교육만으로도 능히 수능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수능이라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공정하게 작동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흔히 지금의 MZ세대와 기존 세대와의 갈등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MZ세대는 기존 세대보다 공정함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물러섬이 없다. 왜냐하면 MZ세대도 한국인이며 한국인들은 유사 이래 특유의 성실함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경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단, 그것이 공정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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