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동양일보]‘프랑스 혁명’을 처음 접한 것은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에서였다.

철없는 왕비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를 지키는 남장여자 근위대장 오스칼(Oscor Francois de Jarjayes)에 대한 이야기다.

극의 흐름으로는 혁명의 먹구름이 한창 드리워지는 와중에 어떤 남자 하나가 등장한다.

주인공 오스칼을 두려워하던 반골 변호사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Lsidore Robespierre)다.

로베스피에르는 서민들이 모인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주인공에게 “왕실 근위대장 오스칼님이 아니시냐"고 큰 소리로 말을 걸어 그가 사람들에게 얻어맞게 만든다.

1780년대 말 프랑스 백성들은 왕이라면 이를 갈았다.

하지만 격랑의 세기는 군사 귀족이었던 주인공과 찌질한 변호사가 한 배를 타게 만든다.

왕당파였던 오스칼이 보기에도 프랑스 왕실은 모순과 무능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만화가 아닌 책으로 접한 프랑스 혁명 속에서 로베스피에르는 권력만 추구한 찌질한 변호사가 아니었다.

그는 치열하게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 답을 얻은 결과 폭력으로 왕조를 뒤엎은 전략가였다.

하지만 이 혁명 정치가는 인간의 감정을 이용해 권력을 거머쥐었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향유하는 동안에는 철저하게 대중의 감성을 무시했다.

그 결과 혁명정부를 만든 지 몇 년 안 돼 자신이 왕을 제거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처형됐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로베스피에르의 길을 걷고 있거나 그를 답습하려는 독재자들이 곳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정치현장이 아니더라도, 이성 숭배자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로베스피에르는 원래 인권 변호사였다.

가난한 노점상이나 사형수를 변호했다.

‘연좌제는 인권침해’라는 논문을 스물세 살에 발표해 프랑스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소 고지식한 편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성품을 갖추고도 있었다.

한마디로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런 로베스피에르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1789년 세 신분의 대표자가 만나는 신분제 의회의 대표로 선출되면서부터였다.

그는 1·2 신분에 속한 성직자, 귀족이 아닌 시민을 뜻하는 ‘제3신분’대표로 활동했다.

그리고 사형제 폐지, 여성 인권 신장과 같은 혁신적인 입법 활동을 하며 오피니언 리더로서 세를 모았다.

당시 프랑스 부르봉(Bourbon) 왕조는 연이은 악재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었다.

1785년에는 가뭄, 1787년에는 홍수, 1789년에는 겨울 추위와 전염병이 사회를 마비시켰다.

그런 와중에 왕실의 살림살이를 떠받치느라 어마어마한 재정이 집행됐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전가되었다.

루이 14세(Louis XIV) 시절부터 외국과 전쟁을 하면서 나라가 진 빚들도 커다란 악재였다.

이런저런 난관을 타개하지 못한 프랑스 왕과 정부는 빚 갚기를 포기하고 ‘채권자’들에게 일반 국민을 상대로 세금을 거두는 권리를 주는 식으로 매듭지었다.

최악의 조치였다.

오랫동안 빛을 돌려받지 못한 상인들과 귀족들은 세율을 점점 올려서 시민들을 착취했다.

로베스피에르는 깊은 분노를 느끼며 회의적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전통 프랑스 사회를 떠받친 교회,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신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필자가 거주하는 충주도 시대변화에 따라 문화·예술·관광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충주지역 문화예술 분야의 첨병 역할을 맡은 중원문화재단이 내년부터 효율적인 조직 운영과 시대상 변화에 따라 충주문화관광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한다고 한다.

내년부터 문화의 힘으로 문화관광 생태계의 유기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며 우리의 예술적 잠재력을 문화와 예술, 그리고 관광산업까지 더해 더더욱 위상을 드높여 발전되기를 기원한다.

문화·예술·관광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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