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동양일보] 2023년 한해가 막바지에 이르러 아쉬움도 많다. 갑작스런 한파에 곳곳에서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세계 평화를 호소했다. "오늘 밤 우리 마음은 평화의 왕이 헛된 전쟁 논리로 다시 한번 거부당하는 베들레헴에 있다"며 "오늘날에도 그분은 이 세상의 무력 충돌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는 힘의 과시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힘의 과시를 통해 위에서부터 불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불의를 없앤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의 평화도 기원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여파로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요르단강 서안 도시 베들레헴에서 올해 성탄 행사가 취소된 가운데 교황은 폭력과 전쟁에 대해 언급하며 "사랑이 역사를 바꾼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기가 평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라며 “전쟁에서는 모두가 패배자”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끝날 줄 모르는 이 기나긴 전쟁은 언제 막을 내릴 것인가. 전쟁에서 희생된 어린아이들과 아이의 시신을 껴안고 울부짖는 부모들, 그리고 힘없이 꺼져가는 노인들,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처참한 지경이다. 살기 위해 도망쳐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을 막무가내로 죽이는 살육의 현장인 전쟁터, 과연 인간의 악함은 어디까지 인가를 곱씹어 보게 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랄함이 극에 달한 이 세상을 보는 아기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고 슬플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연휴 기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을 주축으로 한 정치장교들의 사조직 '하나회'가 일으켰던 군사쿠데타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군사쿠데타 까지다. 대한민국 비극의 서막이었다.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아, 필자는 그때 대학 4학년이었다.

군사쿠데타 이후 폭력으로 생명을 앗아가고 인권이 짓밟혔던 잔인하고 깜깜한 세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그 시절,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지금도 누군가는 그 아픔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필자는 영화 보는 내내 분노감이 높아지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혔다. 극적인 긴장감과 몰입도 높은 전개로 사건의 추이가 급박하게 바뀌면서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2시간20분의 러닝타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영화 속의 전두광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소름이 돋고 울컥했다.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이 물밀 듯이 확 밀려와 참 힘들었다. 스스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전두환씨 등 주요 피고인들에게 원심과 마찬가지로 반란 및 내란죄를 적용, 성공한 쿠데타라 할지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를 남겼다. 대법원의 선고는 12·12는 '군사반란'으로, 5·17 비상계엄 확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은 '국헌 문란 목적의 연속된 폭동'으로 규정했던 원심판결을 유지한 역사적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추징금으로 2205억원을 선고했다.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던 뻔뻔한 전두환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추징금 가운데 922억 원을 미납한 채 세상을 떠났다. 12·12 군사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을 강제진압하며 선량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전두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한국 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을 탄생시켰던 사람.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소중한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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