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한국 사회 고질병 중 하나로 지연과 학연에 기반한 연고주의가 꼽히곤 한다. 연고주의는 ‘우리’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그 정체성 테두리 안에서 중요한 정보와 자원이 흐른다. 학연 연고주의도 문제지만 지역 연고주의는 정치적 맥락에서는 망국병으로 불릴 만큼 지역 간 배제와 반목을 만들어 내 왔다. 국내 지역간 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적 이동이 많아진 지금도 지역 연고주의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고주의에 기댈 수 없었다면, 우리의 생존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친척 한 끄나풀을 염두에 두고 서울로, 도시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던 이촌향도의 미시사 없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켜켜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지방 출신에게 가해진 무시와 차별을 참아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취직도 하면서 버텨낼 수 있게 한 비빌 언덕은 동향민끼리 나누는 연고에 기댄 사회 자본이었다. 이 사회자본은 기득권층에겐 매우 많고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적다. 이미 기득권이 판치는 서울에서 없는 사람들끼리 확인했던 고향연고가 연고주의라고 싸잡아서 비난받을 잘못이냐, 항변도 일리는 있다. 지역의 연고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심정적인 이해는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지역민이 다 토박이인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태어나 어릴 때 잠깐 살았던 사람, 그 지역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가족이 함께 이사하여 오래 산 사람, 고향은 아니지만 지역으로 결혼해 온 여성들, 이른바 며느리들이 지역민에 포함된다. 부모가 살았던 지역이라 지역연고가 있다고 하기도 한다. 지역연고를 가르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지역발전에 한 기여도, 지역의 삶에 대한 이해도 서로 다르다. 그러니 토박이라고는 차마 내세우지 못하고, 어느어느 고장 사람이라는 식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부른다. 지역민을 이루는 연고의 정체도 사실 알록달록 한 것이다.

그런데 지역 연고주의가 불합리하고 차별적이어서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여도, 그것이 끼치는 영향에서 서울과 지방은 다르다. 서울이나 뉴욕처럼 사람들이 몰려드는 고장과, 사람이 떠나가는 지방의 시도에서 지역 연고주의는 다른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 연고주의가 특권이 상대적으로 소수에 집중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인구 구심력이 강한 지역은 그래도 사람과 자원이 몰려들지만, 인구 원심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에서는 더 큰 네트워크와는 분리된 채 좁은 지역에서 끼리끼리만 연결되어 있게 한다. 지역의 유지들은 살 만할지 몰라도 지역 경제며 사회를 발전시키기는 어려우니 도민들 속은 타 들어간다.

한국사회는 우리의 이촌향도와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는 잊은 척,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매우 강한 나라다. 하지만 이제 한국사회도 인구 걱정 때문에라도 인구이동의 구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주정책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 인구는 지금도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과 같은 잘 사는 나라들은 인구감소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어 인구위기를 걱정한다. 지구적 인구분포의 불균형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인구유입을 막고자 울타리를 높이 치자는 주장은 그래도 어차피 인구유입이 많은, 꿈의 지역으로 꼽히는 미국과 같은 국가들에서뿐이다.

인구감소를 고민하는 지역에서는 인구유인책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특정 지역연고를 따지고 그 지역 안의 특정 학교 연고주의를 더한 좁디좁은 연고주의가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역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연결이 중요한 네트워크의 시대다. 배제의 힘을 발휘하는 뺄셈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외부의 힘을 끌어오고 연결하여 키우는 덧셈의 네트워크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것이 외부로부터 더 많은 사람과 물자가 몰려오는 지역이 되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 중심북도 충북의 전략이어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