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동양일보]2024년 새해가 밝았다. 전쟁과 참사가 먼저 떠오르는 작년 한해를 힘겹게 넘어서고서 새로운 해를 맞는 마음이 착잡하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또 집을 잃었다. 그럼에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정세와 맞물려 조만간 전쟁이 끝날 기미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이런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책임이 있는 우리 정치권은 거대 양당이 서로를 증오하면서 책임을 미루는 적대적 공생 체제로 굳어져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여당에서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했지만 그의 말 중에서는 야당과 그 대표를 적대시하는 말이 가장 크게 들려온다. ‘깨끗이 지는 것’을 정신적 토대로 삼아온 거대 야당 대표는 ‘깨끗하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하면서 노골적으로 스스로가 무원칙주의자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둘은 각각 20%대이기는 하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로 극렬지지자들의 무조건적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올해는 4월에 총선을 앞두고 있는 해이기도 하다. 집권 3년차를 맞는 윤석열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지니기도 하고, 우리가 지난 선거에서 거대야당으로 만들어준 정당이 제대로 일을 해왔는가를 평가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은 양당체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첫 선거였다. 우리 표의 대표성이 사표로 인해 위협받는 상황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보완해서, 소수 정당도 표를 받으면 그에 해당하는 의석수를 확보해주고자 한 제도이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서로 경쟁적으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이 역사적 진전을 가로 막는데 앞장섰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지금까지도 이전의 병립형으로 후퇴할 것 같다는 불길한 소식들 말고는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여당이야 본래 기득권 보호에 밝은 정당이니 기대할 것이 없다지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까지 현재의 기득권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이권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방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고,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그 행태를 지켜보아야 한다.

시민들의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는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그 시민의 올바른 정치의식만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 꼼수를 두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정의와 도덕을 팽개치고 서슴없이 이익을 취하는 정치인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표로 심판해야 한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런 올바른 판단을 어떻게든 방해하려는 시도들이 활개를 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지속적인 비방을 통해 제대로 된 정치인이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려고 할 것이고, 쉽지 않겠지만 우리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기관을 동원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행태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면서 시민의 선택을 도와줄 책임이 있는 언론들도 이미 상당수가 그 어느 편에 속하는 당파성을 보여주고 있고, 너튜브 같은 1인 방송의 극단적인 편파성은 이미 도를 넘은지 오래다. 그런 편파적인 정보만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데 익숙해진 동료 시민들과 만나야 하는 고통이 새해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진보와 보수의 구도가 깨지고 확증편향을 갖고서 자기편이면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부도덕한 비호감 대결이 굳어져 버린 느낌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시민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작고 초라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어떤 정치인이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정당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지혜를 갖고자 노력할 수 있다. 그 지혜를 바탕으로 소신 있게 투표하는 시민을 비호감 정치인들은 가장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작은 것으로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이소성대(以小成大)의 가르침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 구한말에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을 찾던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이 펼친 것이다. 오늘의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 걸음도 바로 우리들 자신의 작은 실천이다. 바로 그곳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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