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화가

정명희 화가
정명희 화가

[동양일보]그림을 집에 걸고 보던 시대는 끝났다. 즐길 일들이 많아져서 시간의 값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시대에 구닥다리 같은 평면조형작업인 그림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진 까닭이다. 오랜 세월 유유자작 하던 그림이 시대적 착오가 된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그림도 따라 변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렇게 변했었기에 오늘까지 살아남아있는 것이다. 허나 흐르는 물을 바가지로 퍼 올렸다 다시 쏟는다 해서 같은 물은 아닌 것처럼, 같은 물이라는 생각을 버린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내가 설 자리가 있어 자유의 여정을 지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의 천재시인 존 키츠(1795~1821)가 지은 자신의 비명(碑銘)처럼 금강화가(錦江畵家)란 이름으로 살아온 나의 이름도 ‘물로 씌어 진 이름’일 것이다. 최근 충청이 낳은 소설가 복거일(1946~ )에 의해 세상에 나온 초대대통령이자 건국대통령인 이승만(1875~1965)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제목 또한 <물로 씌어 진 이름>이다. 나 또한 혁신적인 생각으로 그림을 그려왔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녹녹치 않은 험한 길이었으며 긴 여정이었다.

나는 국민 1인당 소득이 겨우 87달러이던 1963년에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때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이 국가재건을 위해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한 것이 벌써 회갑을 넘었다. 그해 12월 한국인 파독광부 1백23명이 처음으로 독일 땅을 밟았다. 그리고 1년 뒤인 1964년 12월에 그가 서독을 방문해서 광부와 간호사 3백50명과 만났다. 행사장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울기 시작한 울음에 대통령 부부를 비롯하여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반드시.”라 말했었다. 재독동포 50년사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서독에 파견한 광부가 7천9백39명이고, 간호사는 1만 7백23명이니 모두 1만 8천 6백62명에 이른다. 우리는 서독정부로부터 얻은 차관과 전수받은 기술로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키고,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 영감을 받았던 시절이다. 그때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이 아껴 송금한 돈이 연간 5천만 달러였다니 당시 GNP의 2% 수준이었다. 그들이 눈물로 쓴 역사는 대한민국을 G20의 선진국 대열에 끌어올린 초석인 것이다.

요즘 세월 이길 장사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며 지낸다. 작업을 위해 작업실 바닥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다보면 발이 저리고 아파 거의 어기적거린다. 작년 다르고 올 다를 게라는 조평휘(1932~ ) 선배화가의 얘기가 헛말이 아님을 느끼는 까닭이다. 2023년 봄, 서울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가 개관 15주년을 맞아 초대전을 마련해 주었을 때 'Freedom Trail 2023'이라 전시 명칭을 붙였다. 그것은 작품에 ‘Freedom Trail’ 이라 번호를 붙여가며 시리즈로 작업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막지 하게 덥던 여름이 가고 가을을 맞으며 임립미술관에서 ‘공주국제미술제(10.6~12.15)’의 부스전에 초대했기로 'Freedom Trail. 2'라 이름 붙였다. 때문에 서울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의 겨울전(11.29~12.5)이 자연스럽게 'Freedom Trail. 3'이 되어 연속성이 부여된 셈이다. 때문에 2024년 청주 네오아트센터 초대전(3.6~4.7)이 연속성을 넘어 정체성을 띄는 'Freedom Trail. 4'로 자리매김 하게 됐고, 2025년의 八旬展이 'Freedom Trail. 5'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금강과 환경, 그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물로 씌어 지기 시작했던 이름들이 어느새 확고한 ‘자유의 여정Freedom Trail’으로 승화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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