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예술을 덧입히면 사유의 공간이 된다
메타세콰이어 숲 근처, 수영장, 오각정길, 솔바람길 벙커에서 작품 감상
“버려진 공간에 예술 접목 시켜 휴식과 사유 가능케 해”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후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후

 

[동양일보 도복희 기자]발상의 전환이 버려져 있던 공간을 예술이 깃든 장소로 탈바꿈 시켰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잡풀만 무성하던 벙커가 작은 미술관으로 재탄생 된 것.

청남대 내에는 대통령 경호를 위해 1983년~1994년 설치된 90여개의 다양한 벙커가 있다. 지붕이 있는 초소(유개호) 20개와 지붕이 없는 초소(무개호) 70여 개가 청남대 개방 후 20년 동안 방치돼 왔다. 관람객이 찾아와도 지나쳐 가던 장소였다.

벙커를 업사이클링해 지역 청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작은 미술관이 됐다. 자연에 예술을 덧입히면 사유의 공간이 된다. 상상력이 확장되는 문화적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예술의 힘으로 다양성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벙커갤러리는 버려진 공간에 예술을 접목 시켜 휴식과 사유를 가능케 했다.

현재까지 메타세콰이어 숲 근처 2곳, 수영장, 오각정길, 솔바람길 벙커 등 총 5곳에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다.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후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후

 

△헬기장 사면 유개호 초소

‘한국의 노래,(이홍원), ‘생명나무(임헌명), 다이어트맨2(정민용)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무인 커피판매기가 설치돼 있고 한국화, 서양화, 공예, 조각 등 지역 청년작가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김종기 청남대관리소장이  벙커미술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김종기 청남대관리소장이 벙커미술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양어장 입구 유개호 초소, 작가: 고정원, 작품명 : bags of time

과거 대통령과 청남대를 지키던 병사들이 사용하던 물품들이 동일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으로 놓여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

헬기장 사면 유개호 초소 벙커 공사 전
헬기장 사면 유개호 초소 벙커 공사 전

 

문득 시선을 돌려보면 거울 속에 내가 보인다.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왔고,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창문 밖에 보이는 사람들도 나와 같이 이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헬기장 사면 유개호 초소 벙커 공사 후
헬기장 사면 유개호 초소 벙커 공사 후

 

시간의 존재를 느끼고 나가다 보면, 초소갤러리가 하나의 무덤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삶)이란 유한한 것 나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전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전

 

△수영장 유개호 초소, 작가 : 윤덕수, 작품명 : 토마토

윤덕수는 미시적 감각을 드러내는 조각가이다. 대개 조각이 거대 서사나 기념비적 사건을 찾아가는 심각한 여정이었다면, 윤덕수는 자신의 일상 근처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사물에 시선을 둔다. 우리의 보편적인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 등을 특별하고 독특한 작품으로 변환시킨다. 토마토, 모과, 체리와 같은 다양한 소재들은 그의 손에서 일상을 뛰어넘어 예술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솔바람길 탐조등 초소 벙커  조성 후
솔바람길 탐조등 초소 벙커 조성 후

 

이 작품들은 실제로 볼 수 있는 과일들보다 더 완벽하고 흠 없는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스테인레스 스틸과 자동차 도료를 이용하는 그의 특유의 기법은 모두 다 다르게 생기고 어딘가에 흠이 있는 과일들의 이데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윤덕수는 우리가 흔히 지나쳐 가는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그것을 예술의 형태로 즐김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전
수영장 근처 벙커 조성 전

 

△오각정길 탐조등 초소, 작가 : 임성수, 작품명 : Manual for bunker

임성수는 자신을 대변하는 특별한 캐릭터를 만들어 이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이야기는 조형적인 상징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아무리 추리해 보아도 언어적인 확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임성수가 그린 인물과 사물들을 이은 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특정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이 결론의 내용을 최종적으로 이해했다는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핵심적인 열쇠 한 가지를 가지면 그의 작품이 숨기고 있는 몇 가지 방의 의미들이 떠오르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솔바람길 탐조등 초소 벙커 조성 전
솔바람길 탐조등 초소 벙커 조성 전

 

이번 초소에 설치된 임성수의 작품은, 이곳 청남대의 이야기이다. 청남대의 한 개 초소라는 장소를 염두에 두고, 이 장소를 사유하면서 나온 조형적 결과들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이 장소의 역사와 환경, 그리고 이 장소를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임성수의 고민의 과정 등이 담겨있다.
 

오각정길 탐조등 초소 벙커조성 전
오각정길 탐조등 초소 벙커조성 전

 

△솔바람길 탐조등 초소, 작가 : 김동진, 작품명 : 공생

김동진이 만든 도자 모자이크 작품들은 경계초소라는 장소 자체를 온기가 있는 곳으로 변화시킨다. 무채색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초소는 그의 채색 타일을 통해 호기심이 깃드는 공간이 되었다. 군인들이 경계를 서던 초소라는 원형을 그대로 지키면서도 그 테두리를 온갖 자연의 색으로 두르고, 안쪽에는 두 점의 작품들이 있다. 그는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호하고, 꽃과 나비, 꽃잎을 흩날리게 하는 바람 등을 묘사했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 작품들의 지지대는 공사장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발판이다. 아무것도 아닌, 버려진 것들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은 김동진 작품의 핵심이다. 마치 공사장의 발판이 도자예술의 캔버스가 되듯이, 병사들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초소조차 예술적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사돼 있다.

 

오각정길 탐조등 초소 벙커 조성 후
오각정길 탐조등 초소 벙커 조성 후

 

△사고의 전환은 변화의 원동력

청남대는 올해 상반기 2곳을 추가적으로 조성해 충북도 수장고에 있는 미술작품을 선정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양어장 근처 벙커 조성 후
양어장 근처 벙커 조성 후

 

청남대관리사업소 김종기 소장은 “옛말에 쓸모없다고 생각한 것이 실은 쓸모가 있다는 말이 있다. 방치하면 흉물이 되지만 잘 활용하면 건물을 짓지 않아도 공간이 생긴다”라고 말하며 “버려진 공간의 업사이클링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문화예술과 휴식공간 제공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양어장 근처 벙커 조성 전
양어장 근처 벙커 조성 전

 

향후 90여개의 벙커가 어떤 공간으로 탈바꿈 될지 기대된다. 사고의 전환은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그 변화가 충북을 세계적 예술도시로 인식시키는 모태가 되길 꿈꿔본다. 공간의 변화가 꿈도 꾸게 한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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