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동양일보]요즘 청년 세대가 여러 정치 뉴스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뻔뻔한 거짓말도 잘하고 자기 잇속을 차리며 강한 권력에는 맹종하는 사람, 경쟁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짓밟는 집단이 성공한다는 그릇된 믿음이 상식이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인지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정치나 시사 방송을 함께 시청하는 일이 거의 없다. 19금을 넘어 전 연령 시청 불가의 컬트 영화와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필자가 국회의원 시절에 직접 겪은 일이 있다.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 일일교사로 초청을 받아 가보니 5학년생 1백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그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서 마치 훈련소에 막 입소한 신병들 같은 분위기였다. 학생들 분위기가 너무 이상해서 선생님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 선생님 설명에 의하면 학생들이 국회의원이 온다고 하니까 엄청 무서운 아저씨가 오는 것으로 알고 겁을 집어먹더라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수업 중에 분위기를 달래보려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 아동들은 필자에게 사나운 깡패를 마주하는 것 같은 긴장을 거두지 못했다. 이게 바로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초등학생의 반응이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어떨까? 마침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2백여 명에게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특강 시작 이후 이들은 초등학교처럼 겁을 먹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산만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단 한마디로 바뀌었다. 한 학생이 필자에게 질문이 있다며 “(남성) 역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한 것이다. 순간 4백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필자를 향했다. 이에 우리 사회의 차별구조라든가 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에는 성적 불균형이 있다고 답했다. 이 대답에 2백 명이 일제히 격분했다. 세상에, 차별받는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인데 저렇게 답변을 하다니. 필자를 못마땅해 하는 이들에게는 남자의 주적은 여성이라는 강한 집단사고가 드러났다.

국회의원 하면서 학교 일일교사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청소년들은 정치가 자신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이해조차도 못한다고 본다. 그들의 부모들도 평소 그렇게 말한다. 최근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 사건의 진정한 배후도 바로 불신과 혐오의 정치다. 2021년 2월에 일군의 폭도들이 미 하원에 난입했을 때 로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분명히 이 폭력의 책임이 있었다. 그가 하원으로 쳐들어 가라고 시위대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행동할 때”라는 말 한마디는 분명 폭력 행위를 촉발하는 효과로 이어졌다는 게 미국 지성들의 해석이다. 지금 야당 대표 테러범이 단독범행이라고 경찰은 말하지만 초등학생들을 겁을 집어먹게 만들 정도로 적대와 혐오를 확산시켜온 정치가 배후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한국 정치인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선동을 매일 쏟아내면서도 폭력 사태에 아무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 그 다음 폭력은 무책임한 정치인들을 향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정치는 비정상적으로 뻔뻔한 사람들이 하는 직업이니 시민을 대리하여 폭력을 좀 행사한 것이 뭐가 그리 큰 문제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앞으로 정치인들을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몸조심 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정말 슬픈 일 아닌가.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면 시민들끼리 서로 충돌하고 피를 흘린다. 남과 여로 갈라치고, 호남과 영남으로 쪼개고, 이념과 가치가 절대화되는 전쟁터에서 민주주의는 죽어가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도 반엘리트 정서와 극우 이념에 바탕을 둔 일군의 집단에 의한 반정치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반정치의 흐름이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성장하게 되면 마침내 파시즘을 표방하는 정당이 출현하며, 일순간에 대의정치의 기반은 붕괴된다. 그런 최악을 막기 위해 정당 간에 권력 사용을 절제하고 경쟁 상대를 존중하는 규범을 정해 놓아야 한다. 이에 역행하면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정당에 대해 다가올 총선에서 시민들은 표로 심판해야 한다. 이는 더 큰 증오와 폭력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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