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응 수필가·증평문화원장

김장응 수필가·증평문화원장

[동양일보]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70여 년 전부터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던 동요 ‘우산’이다.

우산은 지금은 흔하지만 옛날에는 참 귀했다. 50여년전 1970년대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청주교육대학에서 받는데 국어과 지도교수가 과제를 주었다.

‘나는 이래서 아버지(엄마)가 싫다 (밉다)’를 주제로 글짓기를 하는데 이름도 쓰지 않고 자유롭게 과제를 주어서 여름방학이 끝나면 제출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 당시 6학년 담임을 맞고 있어서 반 아이들에게도 똑 같이 이름은 쓰지 않고 제목대로 글짓기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1시간 후에 반 아이들이 글짓기 한 것을 제출해서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글짓기한 작품이 누구 것인지는 전혀 모르고 한 아이 한 아이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어떤 아이는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는데 저녁에 윗방에서 들으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내일 장에 강아지를 팔겠다는 소리를 듣고 팔지 말라고 울면서 신신당부를 하고 그 이튿날 학교에 갔는데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 갔더니 강아지가 없어서 물어물어 강아지 판 가게에 갔는데 강아지가 기둥에 묶여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개 줄을 끊고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와 아버지 어머니가 강아지를 산 사람과 실갱이 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밉고 싫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며 또 어떤 어린이는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아버지가 들어 오셔서는 엄마를 찾더니 점심을 차려 달라고 하시는데 반찬이 이게 뭐냐면서 상을 뒤엎어 반찬과 고추장 등이 엄마 앞치마에 엎어져서 엄마가 걸레로 닦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 아이의 사연이 우산과 관계가 있었다. 옛날에는 우산이 귀해서 한 집에 겨우 하나였다. 이런 이유로 여간해서 우산 차지가 어려운데 등굣길에 비가 내리면 우산 하나로 아이들 중 어느 한 아이만 차지해 삼형제인 이 집에 6학년인 자기는 차례가 안 오고 2학년 동생에게 우산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포대 같은 것을 뒤집어서 고깔마냥 머리 위에 쓰고 다녔다. 왜 동생만 우산을 주고 자기는 안 주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그때는 엄마 아빠가 미웠다는 얘기였다.

요즈음은 지역 행사나 축제에 가면 으레 기념품이나 답례품으로 우산이나 수건을 주기 때문에 가정마다 우산이 네 다섯 개가 있어 사람 수대로 우산을 갖고 다니지만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시기에는 우산이 정말 귀했다. 문뜩 주마등처럼 그 당시의 우산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산은 비나 눈이 올 때 비나 눈가림의 역할도 하지만 뜨거운 뙤약볕 밑에서 해 가림으로도 쓸 수 있는 귀중한 가정 필수품이다.

비록 우산의 하는 일이 어릴 적 순수한 동요 속에 나오는 보잘 것 없는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으로 어린이를 비나 눈에서 보호하는 작은 역할이었지만 노란우산공제, 핵우산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훌륭한 우산도 있다는 자부심에서 비 오는 오늘 이 우산과 함께 빗속을 홀연히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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