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40분이면 도착하게 되는 곳이 일본 규슈 남단에 있는 가고시마이다. 가고시마현 전체로는 인구가 약 158만명에 달하며 현청 소재지인 가고시마시의 경우 인구가 약 60만 정도이다. 가고시마에서는 도심에서 4 km정도 떨어진 사쿠라지마(桜島)에 있는 온타케산(御嶽山)의 분화 활동을 직접 볼 있는데 이는 베수비오산이 있는 이탈리아 나폴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이국적 풍광과 따뜻한 날씨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곳이 바로 가고시마이다.

사쿠라지마 외에도 가고시마에는 센간엔(仙巌園)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이곳은 사쓰마번의 다이묘(大名)였던 시마즈 미츠히사(島津光久)가 만든 별장이기도 한데 뜻밖에도 원안에 십자가가 그려진 마루에 열십자(丸に十文字)라고 하는 문양을 정원 입구부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사쓰마번을 지배하였던 시마즈가의 상징으로써 최근 상영 중인 영화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싸우는 시마즈 요시히로 군(軍)을 상징하는 깃발에서 같은 문양을 볼 수 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당시 조선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줬을 뿐 아니라 많은 조선의 도공들을 일본으로 끌고 가서 이후 세계적인 도자기인 사쓰마 도자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사쓰마번의 번청 소재지가 가고시마였기에 관광객으로서 가고시마를 다니는 것이 마냥 마음 편한 일은 아니게 된다. 일본 내에서 농업 생산성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사쓰마번이었지만 일본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이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15세기 이후 외부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들 스스로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쓰마번의 선진 문물 수용이 향후 일본이 동북아에서 패권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원동력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쓰마번과 서구 문물과의 조우는 우연이었다.

1543년 가고시마 앞 바다에 있는 다네가시마(種子島)에 왜구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포르투갈 사람이었던 안토니오 다 모타(Antonio da Mota)가 표류하던 포르투갈 선박을 통해 도착한다.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이 섬의 지배 영주인 다네가시마 도키타카(種子島時曉)는 포르투갈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조총의 성능을 확인하고는 비싼 돈을 들여 이룰 구입 한 후 제조법과 사용법을 배워 이를 자체 제작하게 된다. 표류하던 포르투갈 선원에게 우연히 전수 받은 조총이었지만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통일과 임진왜란 개전 초기 조선군의 고전은 바로 조총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에게도 조총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 전인 1590년 쓰시마섬의 도주 소 요시토시(宗義智)는 선조에게 조총을 진상하였지만 선조는 그것을 군수물자를 관리하던 군기시(軍器侍)에 보관할 것을 명하였다고 한다. 곧 적군이 될 일본이 스스로 조총을 보여줬음에도 당시 조선 조정은 조총이 어떤 무기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징비록’에는 조총을 가진 왜군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란 유성룡의 말에 신립 장군이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 것이 아닐 거라는 한가한 대답을 했노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총으로 전 국토가 유린 되었고 조총을 가볍게 여겼던 신립 장군은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세상만사가 명확한 인과관계와 논리로만은 설명되지 않는다. 만일 15세기에 포르투갈 선박이 다네가시마에 오지 않았다면, 쓰시마 도주로부터 진상 받은 조총을 조선 조정에서 관심 있게 지켜봤다면 동아시아의 역사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성경 구절 은 우리 일상에서도 늘 성립하는 말이다. 우연을 행운으로 만드는 것 역시 능력이고 여기에는 새로움에 대한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계속되는 우연을 과신한 나머지 이를 신격화하고 맹신하여 국가와 국민을 재앙의 나락으로 빠트린 일제와 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우연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개인의 삶과 국가의 흥망성쇄에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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