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동양일보]교원노조와 교육청에서 근무하다가 거의 10년 만에 교감 직위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와 접촉이 없지는 않았으나 온몸으로 부대끼는 학교살이(?)는 오랜만이라 낯설고 새로웠다. 맡은 일들은 대다수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매뉴얼을 들여다보고 주변에 물어물어 한 건 한 건 처리해야 했다. 문득 돌이켜 보니 짧지 않은 한 해였다.

아침마다 규정된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왔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창을 열어 환기하고 사무기기 전원을 올린다. 커피를 내리고 얼음을 얼려둔다. 학교 주변 교통 순찰을 하고 돌아와 일과를 체크하고, 급히 병가를 낸 교사의 복무와 보결 기안을 한다. 보건교사 출근 전 교무실을 들르는 아이들 약을 발라주기도 하고, 아침 육아시간을 이용하는 교무실무사를 대신해 민원전화 응대를 한다……. 거의 변하지 않는 아침 루틴, 이런 반복적인 일들은 반드시 교감이 해야 할 일에는 속하지 않는다.

매일 공문, 내부 기안, 복무 사안, 결석계 등의 결재 처리에 더해 각종 행정 사안 추진, 교육환경 점검, 교육과정 운영 지원에 더해 민원 처리, 교권 문제 처리, 결강 교사 수업 지원, 학급에서 넘어온 학생 상담, 주요 학교폭력 사안, 교원인사 업무 처리 등등 관리자로서 교감의 업무를 추진해야 했다. 구체적 사례나 세분된 업무를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사실상 학교의 모든 일이 교감의 일인 듯 여겨졌다.

다른 지역 교사노조 위원장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요지는 ‘관리자는 경력도 많고 월급도 많이 받으니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어야 타당할 것 같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학교 관리자가 학교의 리더로서 학교 운영의 제반 사항을 관리하고 주요 업무를 기획해야 함에도 온갖 실무에 시달리게 한다면 관리자로서 본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본 직무가 같지 않은데 단순하게 판단하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 관리자는 여러 업무를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직원을 조직하여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 임무이지 솔선수범한다면서 매사에 앞장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게다가 관리자는 교사들이 할 수 없는 사실상 모든 일을 보충, 보완하는 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졸업식과 2학기 종업식이 있는 날, 교육 지원청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위원장이 신원을 묻더니 ‘어째서 학폭부장이 아니라 교감이 나왔냐?’고 물었다. 그래서 ‘학교 행사일이라 담당 부장이 반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까닭에 교감이 나왔다’고 답했다.

교감의 다양한 업무 속에는 이른바 감정노동도 없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라던 어느 교감의 소회가 실감으로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교사의 요구와 불만, 갈등은 수시로 쏟아져 나오지만, 조정과 합의, 소통과 협력은 시간이 걸리고, 매번 순조롭게 매듭지어지지 않으니 실권 없는 교감이 왕왕 타깃이 되어 비난과 원망을 무릅써야 하기도 했다.

겨울을 좋아한다. 긴 겨울은 침묵과 성찰 속에서 봄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는 계절이다. 움직임이 없는 침묵, 내면을 향한 눈길, 부산떨지 않는 준비……. 교사들은 휴식과 재충전, 국내외 연수, 새로운 교육 실천의 용기를 길어 올리며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교감도 이 기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

학교의 모든, 또는 거의 모든 일은 교감의 일이다. 두어 개 위원회를 제외한 모든 위원회의 장이 교감이지 않은가. 방학이어도 근무를 하며 인사이동에 따른 교무분장 조직을 하여야 한다. 새 학년 세부 교육계획 수립도 살펴야 하고, 새 학년 준비 기간 운영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신경 써야 한다.

와중에 새로운 일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업무량이 점점 증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가. 교육청이 학교의 업무 총량을 관리해주고, 추가업무 발생 시에는 업무인력을 반드시 추가 배치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모든 교육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교감에게도 살아야 할, 걸어가야 할 또 한 해가 앞에 놓여 있다. 승진을 하든 못하든, 월급이 많든 적든 직분과 직무를 감당하면서 힘차게, 용기를 내서 나아가 보자. 이 땅 모든 학교의 교감 선생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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