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첫째, “법칙이 법칙을 낳는다” 대인증무(待人贈務)법칙, 적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그 사람에게 임무를 준다. “아름다움이란 절로 아름다울 수 없고 사람에 의해서야 드러난다. 난정(蘭亭)이 우군(右軍)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맑은 여울물과 긴 대나무가 쓸쓸한 산에 묻혀버렸을 것이다.이 정자는 궁벽한 민령(閩嶺)에 위치하여 그 뛰어난 경치를 보러 오는 이가 거의 없으니, 이 정자를 세운 사실을 글로 쓰지 않아 거룩한 자취가 인멸되게 한다면, 이는 숲과 시냇물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연과 기록이 중요하다.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773~819)의 <옹주마퇴산모정기>의 말이다. 전통문화연구회가 2019년 먼저 번역했기에 그대로 인용했다. 조선유학자들도 창의했다. 삼경사서 당송팔대가 등의 내용을 창용하면 학문문학예술로 역사에 불사의 인물이 된다. 숭례문, 돈의문, 삼국사기, 동문선, 청룡암을 보라. 자연과 사람을 문학철학예술로 창의융합해야 새롭고 가치있는 불멸의 인문유산이 탄생된다. 화양구곡이 대표적이다. 이하곤의 증조부 이시발이 벼슬을 사임하고 1596년 화양동 가기 전 후영리(後潁里)에 집터를 잡고 산수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호를 “후영어은(後潁漁隱)”이라했다. 화양동일대가 그의 땅이었다한다. 송시열이 은거하고, 권상하 민진원이 화양동이라는 자연계곡에 구곡을 입혀, 화양구곡으로 창의탄생시켜 '구곡문화의 수도'로 만들었다.

둘째, 쌍곡구곡의 아름다움은 인터넷에 올라있다. 북두칠성성혈과 항아리모양 암각화는 지나쳤다. 조상들은 자연에 살면서 자연과 천체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심을 암각화와 북두칠성성혈로 남겼다. 떡바위에 앉아 즐기면서, 조상의 삶의 지혜와 마음을 배워 오늘에 창의활용하는 것도 후세의 도리다. “배운만큼 누린다”

셋째,북두칠성성혈제단에 중요한 유산이 있다. <주역>에 ‘적선지가,필유여경’이 있다. 경험통계심리학적 결론이다. 정공운호씨청덕불망비(鄭公雲鎬氏淸德不忘碑)다. 앞면 오른쪽에 “차곡유주(此谷有主)비공기수(非公其誰). 산지소산(山之所産)여인공지(與人共之).이 쌍곡구곡의 주인이 있으니, 공이 아니면 그 누구랴. 산에서 나오는 산물을, 사람들과 공유하게 하네” 왼쪽에 “수도렴평(收賭廉平)구일순풍(舊日淳風). 경작불이(耕作不移)심몽기덕(深蒙其德). 도지를 거둘 때 저렴하고 공평하게 하니, 그 옛날같은 순후한 풍속이요. 농사짓는 사람을 바꾸지 않으니, 그 덕을 깊이 입었도다. 1940년 6월 5일 다시 세웠다" 2024년 1월 6일 토요일, 쌍곡구곡을 정한 정재응(鄭在應1764~1822)의 6대손인 정태건(1936~ )선생님께 전화로 여쭸다. “할아버지님이시다. 집에 한문고서가 많았는데 화재로 타버렸다. 처음 쌍곡입구에 세웠었는데 장마로 소실되어 82년전에 떡바위에 세웠다. 쌍곡일대의 산이 할아버지 소유였다. 그래서 장연칠성주민들에게 산에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게 해주어, 주민들이 고마운 마음을 새긴 것이다. 그 당시 봄에 보리 한 말, 가을에 벼 한 말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유류가스전기등으로 난방을 하지만, 당시에는 임산물이 주요 난방연료였다. 난방연료변천과정, 사용료지불방식의 변천사를 배울 수 있는 비석이다. 할아버지의 적선지덕으로 정태건님은 무병장수다복하다.

넷째, 쌍곡구곡의 아름다움도 즐기고, 정운호공덕비를 통해 적선의 미덕과 감사하는 예의도 배우자. 'manner', 'etiquette'을 강조한다. 삼강오륜을 현시대적으로 창용하나? 현재 패륜범법수전노대국이 됐다. 다음 말은 1966년 중학교 1학년 영어시간에 배웠다. "excuse me. You are welcome. not at all.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 "goodbye" 이 기본적 인사말을 실천하나? 정치윤리 경제윤리등 윤리가 바로 서야한다. '윤리유신'이 재건회복되면, 만사형통, 국태민안, 더욱 초일류 선진예의부강한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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