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충주대원고 교장

김인섭 충주대원고 교장

[동양일보]지난해 11월 초 갑자기 기온이 올라 단풍이 미처 물들지 못한 채 말라버린 후 또다시 한파가 닥치고 바람이 불면서 파랗게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매해 가을이 되면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산천을 일컬어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표현해 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은행나무 낙엽이 노란색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니. 가을답게 물들어야 할 잎들이 기후 변화로 제 역할을 미처 다하지 못한 채 떨어져 버리는 모습을 보며, 은행잎이 은행잎다울 때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더불어 나다움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고찰한다.

우리는 종종 ‘나다운 게 뭔데?’라며 ‘-답다’라는 말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하는데 복날에는 삼계탕을 찾아 먹고, 동지에는 팥죽을 챙겨 먹고, 당해에 난 식재료에는 ‘햇-’이라는 단어까지 붙이며 으뜸으로 쳐 주는 것을 보면, ‘때와 시기에 맞는 것, 그러한 자격이 있는 것’은 결국 훌륭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답다’는 의미를, ‘나를 알고 때와 시기에 맞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실로 행하는 것’쯤으로 정의해본다.

내가 본 충주대원고는 나다움을 실현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학생들은 진로를 설계하는 것을 시작으로, 3년 동안 자기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도전해 나아감으로써 탄탄한 3년의 경험이 마무리된다. 교육과정, 교과 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젝트 및 수업량 유연화 활동 등 자신이 설계한 진로 계획에 맞추어 3년을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학생으로서 나다움을 실현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 아닐까.

선생님들은 충주시 평준화 첫해를 맞아 입학한 신입생들의 학력 차이를 파악하고 각각의 수준에 맞게 교육과정을 설계·운영함으로 선생님으로서의 나다움을 발휘해 주신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을 위한 두드림 맞춤형 교육과정, 최상위권 의학계열 및 대학 진학 희망 학생을 위한 3개년 특별 프로그램 운영 등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학교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 주신다. 학생 각자의 나다움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선생님답게 고군분투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과 헌신은 한없이 감동적이다.

충주대원고에는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만들어가는 다양한 교육활동이 많은데, 그중 ‘월간 인문학’이라는 학생 맞춤형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월간 인문학은 새 학기 시작과 동시에 학생들이 운영진과 활동진으로 나눠서 진로·진학 방향을 고려해 1년 일정에 맞게 월별 도서를 선정한다. 달마다 선정된 책을 함께 윤독하면서 학생과 선생님이 꾸준하고 깊이 있게 소통하고, 독서를 통해 학생들의 배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포착해내는 것이 특별하다. 학생들은 서평과 토론으로 활동을 마무리하고 교사는 이러한 일련의 배움의 과정이 학생 개개인의 진로 방향과 정밀하게 맞물려 기록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가고 있다. 학업 역량 못지않게 인성이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는 시기에 충주대원고 학생들은 월간 인문학과 같은 학생 맞춤형 학습 경험 안에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와 나와 다름에 대해 귀 기울이며 존중하는 태도를 자연스레 마련한다.

2년 전 우리 학교를 입학하면서 ‘내가 전설이 되겠노라’ 다짐하는 신입생을 보았다.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결정했던 무수히 용기 있는 선택들, 집중과 몰입으로 ‘나’다운 3년을 꾹꾹 눌러 채워가는 모습이 단연 돋보였다. 얼마 전 실로 그 학생이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입학’이라는 쾌거를 거머쥐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다움은 내가 적극적으로 실현해 나아갈 때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이 학생을 통해 배웠다.

각자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나’다운 삶을 실천하고 있는 충주대원고 학생과 선생님들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 덕분에 각자의 때에 맞는 하루를 충실히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 더불어 나다움의 빛깔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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