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하재영 시인

[동양일보]미래가 왔다.

꿈꾸던 미래였다.

미래는 먼 곳에 있는, 산 넘고 물 건너 존재하는 이웃 마을 사람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은 사랑이 넘치고, 온화하면서 평화를 가져올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지구에 온 미래는 희망보다 절망의 소리를 들려준다. 지구란 땅덩어리에서 우주보다 더 큰 생각을 한다는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는 유토피아였다. 꽃이 만발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사랑의 샘물이 퐁퐁 솟아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심은 오래 전 과거와 별반 다름없는 미래를 모시고 왔다. 모시고 왔다기보다 끌고 왔다. 에덴동산과 같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꿈꿨지만 자연은 곳곳이 파괴되고, 인종과 종교간 불화와 반목은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더욱이 많은 나라들이 휴화산처럼 무기를 품에 숨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평화를 생각하는 간절함이 더 절실해진 미래가 온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전쟁을 겪지 않으면 평화로운 시대에 살았다고 할 수 있겠죠.”

이미 세상을 떠난 조부모와 부모는 6.25라는 전쟁을 겪었다. 전쟁을 겪은 그분들로부터 종종 참상을 들었다. 전쟁터에서 들리는 포 소리와 죽은 사람의 시체, 피난, 궁핍은 흔한 풍경이었다고 했다. 나와 7살 차이의 막내 고모는 피난 가는 도중 대전 유성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상상만 해도 비참함이 널브러진 상황이었을 것이다.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앞이 안 보이는 그런 참담한 현실에서도 밝은 미래를 꿈꾸었다. 희망이었다. 자유와 평화와 번영 더 나아가 행복이 가득하길 바랐다. 그것이 미래였다. 그분들이 꿈꾸던 미래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난해 2023년은 전쟁 소식을 많이 들은 해였다. 우리와 가까운 나라는 아니었다. 먼 거리에 있음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참혹함은 생생하게 안방에 전해졌다. 그 전쟁은 2024년 지금도 멈춤 없이 진행 중이다. 숱한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평화를 빌미로 무기를 대량 생산하자는 목소리가 우리 주변에 강해지고 있다. 미래를 부정하는 아이러니다. 참으로 안타깝다.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에는 평화가 바닷물처럼 넘실거렸으면,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서로 상생의 신발을 신었으면, 그러면서 올해는 과거에 꿈꾸던 평화의 미래가 우리 앞으로 왔으면 좋겠다. 그 바람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적어본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그릇됨이 있는 곳에 참됨을/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어둠에 빛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우리는 줌으로써 받고/나를 잊음으로써 나를 찾으며/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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