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48년을 동물과 관련된 삶을 살아왔다. 수의사이자 수의대 교수로 신약개발, 비임상 연구를 하는 기업 대표이기에 오직 동물만이 관심사였다. 아는 나무란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정도였다. 6년 전 14년을 함께한 반려견 써니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써니가 가기 1년전 아내는 늙어가는 써니를 위해 방치된 농지에 정원을 만들고 잔디를 심어 뛰놀게 하자고 당부했다. 조성을 미루다 폭우로 농지가 훼손되자 토목공사를 하고 봄이 되면 정원을 만들려 했으나 써니는 먼저 갔다. 아내는 써니의 유골함을 애지중지 머리맡에 보관하다가 봄이 되자 정원을 만들어 모과나무를 심고 수목장을 해주었다. 써니를 보낸 슬픔과 위안으로 수목장에서 시작된 나무와의 만남은 삶을 완전 바꿔 놓았다. 평생 일중독으로 골프도 운동도 안하고 벤처 창업까지 하여 불안과 스트레스에 지친 심신이 나무를 심으면서 위로받고 치유되었다. 사업은 한 치 앞도 모르고 노력해도 뜻대로 안되지만 나무는 배반치 않고 뿌린대로 보답하는 선물이었다.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궜던 벤처 정신으로 황무지를 멋진 정원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즐거움이자 희열이였다. 시험공부 하듯 나무, 야생화, 조경에 관한 모든 책, 도감을 독파했다. 살지 죽을지 조마조마하면서 처음 심은 나무들이 고맙게 잘 자라 주었다. 나무를 기르는 것은 재배 기술이 아니라 관심과 아낌없는 보살핌인 것 같다. 멋진 나무, 못난 나무, 잡초, 어떤 것도 다 의미가 있고 꽃·열매 모두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나무나 식물의 외관도 모르고 수 백건의 천연물의 약효검증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직업이 교수라 평생 어쩔 수 없이 전공 공부를 했지만 새로운 나무, 야생화 이름을 익히고 배우는 지금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의 힘 또한 대단하다. 5년이 지나자 큰 나무, 작은 나무, 초화류 지피식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황폐한 땅은 서서히 작은 숲으로 바뀌었다. 만병초, 모과나무, 괴불나무, 수수꽃다리, 귀룽나무, 구골나무, 모감주, 소사나무, 누릅나무, 노각나무 등 나무 각각에는 의미와 지혜가 담겨 있어 나무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렌다. 팬데믹 코로나 시절, 사회적 거리두기는 만남의 단절의 시기였지만 필자에게는 이 지역에 생육가능 한 200여종, 1만주가 넘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2백 여종 야생화, 초화류를 심을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이었다. 나무를 심고 기르면서 추억을 만들고 늘 그 자리에 있는 나무를 보고 거닐면서 계절의 감각과 변화를 알게 되었다. 시간 차를 두며 번갈아 피고 지는 야생화와 나무들은 주치의이자 청량제이고 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활력을 얻었다. 머지않아 수목원이 좀 더 숲다워지면 어린 꿈나무들을 초대하여 나무와 꽃, 자연의 신비로움을 전도하는 숲 해설사가 되고 싶다. 나무는 위대하다. 나무에서 인간의 삶을 깨닫고 배운다. “겨울이 되면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매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그 의연함에서, 내가 알아야 할 삶의 가치를 배웠다”는 나무박사의 글이 생각난다. 오늘 영하 15도!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이다. 최강 추위에도 모든 잎을 다 떨궈 비운 알몸으로 기둥, 줄기, 가지의 멋진 선으로 향연을 베풀어 모든 것을 주는 겨울나무가 더 없이 순결하고 아름답다. 나무의사는 아니지만 생명을 다루는 수의사이기에 아프고 병든 나무를 보면 정성껏 돌봐 치료할 것 같다. 나비, 벌, 새들의 보호를 위해 농약을 사용치 않으련다. 아픈 나무에게는 나무야 사랑한다! 잘 버텨라! 화이팅!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필 것이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도 친구이자 안식처인 수 많은 나무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이제 남은 생을 나무에게 감사하며 더불어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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