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동양일보]시모니데스(Simonides, BC.556~BC.468)는 생애의 대부분을 궁정을 떠돌아다니며 왕의 위업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바치며 생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모니데스는 연회에 참석했다가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장면을 기억해내야만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연회장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왕을 비롯한 참석자 전원이 사망하였고 하필이면 망자들을 본 유일한 생존자가 시모니데스였다. 누가 왔는지, 그가 어느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여야 했다. 혹여 우리는 엊그제 점심은 누구랑 먹었는지 메뉴는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우리 몸에는 흉터 한 두 개쯤은 있다. 의학에서는 흉터를 상처 부위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염증반응, 혈관 생성, 콜라겐 섬유의 불규칙적인 다량 생성 등 다양한 생리현상의 결과물로 본다. 도마가 확인하고자 했던 예수의 못 자국, 총알이 스친 참전 용사들의 탄흔, 영원한 저주인 카인의 표식, 죄인의 얼굴에 경(黥)을 친 형벌, 청춘의 상징인 여드름 자국, 마음속의 상처 등은 모두 흉터와 관련된다.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영원하다. 때로 흉터의 기억은 마음먹기에 따라 성숙의 상징이 되고 강력한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크 트웨인의 단편 <최면술사>는 극도의 고통을 참아내며 가짜연기로 최면술사와 관객을 속인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그 거짓을 다시 되돌리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라는 고백으로 끝난다. 우리의 뇌는 의식·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저장한다고 한다. 최면술은 수사기법에서도 활용되는데 피해자나 목격자가 범죄를 경험했거나 목격할 당시에 심각한 정신적 외상으로 범죄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에서 사라진 경우에 활용된다. 이때 최면술은 목격자나 피해자의 기억상실을 회생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청준의 <축제>는 사람의 죽음과 장례의 마당을 잔치분위기인 축제의 의미와 연결시키면서 슬그머니 사라지는 노인들의 생애를 묘사한다. “할머니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키가 거꾸로 작아지고 기억력도 사라져 간다. 그렇게 자꾸 더 작아져가는 키와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모두 우리 뒷사람들의 삶과 지혜로 전해져 있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당신들의 귀한 삶을 모두 우리 뒷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신다.” 우리는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그 아득한 기억여행을 잘 살펴드려야지 나이 든 노인들의 누추한 노망기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기억여행은 과거의 그리움을 들추는 일이며 바람처럼 자유로이 세상을 누비는 일이다.

조선시대 과학 이론가 정초(?~1434)는 어떤 서적이든 한 번 보면 당장 외워버리는 수재였다. 청년시절에 그는 어떤 스님이 <금강경>을 읽는 것을 보고 "그 경전을 한 번 보고 외울 것 같소이다"하고는 한 번 읽고는 물 흐르듯이 외워 버렸다. 정초는 장영실에게 시계 제작에 대한 이론을 전수하고 물시계 작업을 주관하였다. 정초는 실용농서인 <농사직설>의 편찬을 주도하여 곡식 재배와 수리, 기상, 지세 등의 환경조건과 농민들의 경험담까지 상세히 기술하였다. 기억력의 대가 정초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왕에게 혼천의를 올리고 죽음을 맞이했는데 병상에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시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과거의 사건을 불러오고 그 기억을 공유하며 전승한다. 기억의 사회적 형태는 소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으로써 전자는 일상생활을 통해 가능하지만 후자는 집단의 기억으로써 오랜 기간 전승되는 특징이 있다. 기억의 집적공간인 박물관과 도서관은 자원과 지식의 보고이다. 미래는 시민들이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지적 장소의 준비여부에 따라 도시의 부침이 결정될 것이다. 우리 발밑에는 과거의 흔적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서사가 있음으로 도시를 걷을 때에는 발아래에 놓인 것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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