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되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 법은 5~49인 사업장에 대한 2년 유예 개정안에 여야가 끝내 합의하지 못해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따라서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 등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형사처벌 등을 받는 리스크를 영세 기업들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맞게 됐다.

현재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국 83만7000곳에 달한다.

충북지역은 기존 적용 대상인 사업체(1998곳)를 포함해 2만6472개 업체에 적용된다. 중대재해가 잦은 제조업과 건설업 사업장은 물론 재해 발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음식점과 빵집, 치킨집 등 서비스업 사업장이나 사무직만 있는 사업장도 대상이다.

이처럼 업종과 관계없이 적용되면서 노동계는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됐다며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그대로 시행돼 산업재해는 줄이지 못하면서 사업주만 무더기로 처벌받게 될 우려의 시각이 팽배하다.

법 시행 2년 가까이 됐지만 현장의 혼선은 여전하다. 지난 2년 동안 충분한 홍보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법 적용 대상인지도 모르는 사업장도 부지기수다.

법 조항이 모호하고 매뉴얼과 각종 절차서 등 서류작업이 너무 많다는 불평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실제 법이 시행된 후 컨설팅이나 기술지도, 교육 등의 정부 지원을 한 번이라도 받은 곳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법규가 복잡하고 부가되는 업무도 많기 때문에 안전관리 전문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세업체들은 추가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호소한다.

고령자와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의 경우 취약한 인력구조 탓에 사고 발생과 처벌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총이 50인 미만 사업장 1053곳을 조사한 결과 45%는 안전·보건 업무를 수행할 인력이 없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가 자영업자 등을 상대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받을 수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하고, 사설 컨설팅을 받으려면 1000만원 이상 든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업체들이 직원을 해고하거나,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직원수 5명이 넘는 사업주 중에서 4명 이하로 낮춰 사법 리스크를 피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형사처벌을 의식해 안전 관리 매뉴얼 작성과 절차서 마련, 형식적 교육에 치중하느라 법률 컨설팅을 하는 로펌들만 돈을 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법의 궁극적 목표는 처벌보다는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데 있다.

이윤을 따지느라 노동자의 안전을 소홀히 한다면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든 법안이라도 현실성이 없으면 결국 악법이 되고 만다.

생존을 위협받는 영세 기업에게 필요한 지원 조치를 다각도로 검토하는 한편 50인 미만 기업들은 최대한 빨리 스스로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 산업계, 노동계는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개선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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