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인 충주성심학교 교사

정서인 충주성심학교 교사

[동양일보]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매일 콩나물에 물을 주는 일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물이 다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 헛수고인 줄만 알았는데/ 저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

이어령 박사님의 시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의 구절로 문을 살며시 연다.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이만큼 성장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때 찾아오는 보람과 행복은 마음을 참 뿌듯하게 한다.

충주성심학교는 1955년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미국 옥보을 신부님에 의해 설립됐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라는 신념으로 심으신 사랑의 씨앗은 이제 68년의 세월을 품은 나이테를 간직한 큰 나무가 되었다. 나 또한 콩나물시루와 나이테를 품고 1988년 3월부터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글 모음인 문집 ‘내 마음의 소리 Ⅰ’이 발간됐다. 빛바랜 누런 종이에 실려 있는 나의 글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청주 파견학급이 상당구 이정골로 이전되던 그해부터 파견학급에서 근무했으며, 2004년에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성심 예술제가 충주문화회관에서 있었다. 당시 파견학급 아이들과 무대에서 율동했던 유치원생이 지금 특수교사가 되어 예쁜 기억으로 간직할 정도로 내게도 인상 깊은 행사였다. 개교 60주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깨알 같은 곡식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성심관에서 작품전시회를 열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했던 활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제각기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여 노래와 율동으로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동요발표회, 동화 속 이야기를 거뜬히 소화하여 몸으로 표현하는 동극발표회, 본교 유치원을 졸업하고 일반 학교에 통합된 아이들을 초청하여 함께 활동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통합캠프,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에서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 열심히 응원했던 가을운동회, 그 외 수학여행, 독서 골든벨, 타자 왕 선발대회, 여름 수련회 등 셀 수 없이 많다.

자발적 언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 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눈(수어로 표현)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던 아이, 유치원 때 친구의 물건에 손을 대는 습관을 고치고 이젠 친구 물건에 손대지 않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던 아이, 전학 온 후 처음 영어를 접하는 아이가 낱말을 읽어내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던 아이 등 함께 지냈던 아이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교사의 길을 선택하고 행복을 내게 안겨 준 교직 생활은 주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이제 정든 콩나물시루를 내려놓고 글쓰기 시루를 받아들고 글 여행을 마음껏 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공저로 출간한 ‘괜찮은 오늘, 꿈꾸는 나’ 제목처럼 괜찮은 오늘을 살아가며 또 다른 꿈을 향한 걸음을 조금씩 내딛으려 한다. 곧 70주년을 맞이하게 될 성심학교가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꿈의 동산이 되고, 설립자의 정신대로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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