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자 수필가

김애자 수필가

[동양일보]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상상의 동물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오래전부터 상서로운 영물로 알레고리를 이어왔다. 삼국유사에서도 해모수의 아들이 지상으로 내려 올 때 다섯 마리 용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왔다고 전한다. 또 신라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되어 나라를 지키려는 소원이 간절하여 바다에 능을 만들었다. 그게 대왕암이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권좌에 오른 왕들도 앞뒤 흉배에 용을 수놓아 입었다. 백성과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용처럼 지혜와 덕으로 일신을 바치겠다는 의미가 담긴 용포였다. 그러나 연산군과 광해군은 용포 값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용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민화를 그리는 친구는 새해 벽두에 카톡으로 커다란 입에 여의주를 물고 눈썹과 수염을 휘날리며 승천하는 청룡을 그려 보내왔다. 청룡은 원숭이띠와 합(合)이 맞아 행운을 얻게 될 것이란 축원의 메시지도 들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올해는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아 저마다 이루고 싶은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취직을 못하고 캥거루족으로 일컫는 청년들이 취업에 거는 소원은 가장 절실했을 터이다. 더구나 생상성 AI 출현으로 공장의 기능직은 물론 광고회사 젊은 인재들마저 직장을 잃게 생겼다. 내가 사는 소도시에도 세탁소와 커피숍, 문방구까지 주인이 없고 키오스크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과 대화 한 마디 없이 카페에서 로봇이 타준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건축경기도 불황이다. 날품팔이로 먹고 사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첫새벽부터 인력시장을 찾아가지만 일감보다 노동자들이 더 많아 일당벌이는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데도 4월에 치를 총선을 앞두고 거리마다 내 건 현수막 구호는 자기들 당만 뽑아준다면 새로운 천국을 만들 것처럼 말잔치가 요란하다. 상대방 쪽을 비난하는 문구들은 유치해 청소년들이 저걸 읽으면 어쩌나 겁이 덜컥 난다.

현대인들은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법적구조와 체제의 틀에 갇혀 매우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국회에서 정한 세법으로 국민들은 억울해 죽을상이다. 연봉 1억이 넘는 직장인들은 40프로를 세금으로 뜯긴다. 친구는 허리띠 졸라매고 장만한 건물 한 채가 재산 전부다. 영감님이 돌아가시자 관리가 어려워 팔고 싶어도 상속세가 무서워 팔아야할지 말아야할지 전전긍긍이다.

대선을 앞둔 미국도 마찬가지다. 내가 용이 되면 아메리칸 드림을 새롭게 만들 것이라고 뻥을 치지만 용으로 등극하기엔 너무 늙었다. 임기동안 올해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빼 놓지 않고 읽었던 오버마 대통령이 새삼 그립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그 정도의 열린 의식과 여유와 품격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멋지게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서도 정치판을 향해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여하지 않는 것도 미덕이다. 언제 쯤 우리나라에도 그런 용이 등장할까. 용꿈을 안고 깊고 푸른 밤에 안겨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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