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영 옥천고 교사

손미영 옥천고 교사

[동양일보]5살 딸아이는 오늘도 궁금한 것투성이다. 이것, 저것 온통 궁금한 것들뿐이다. 때론 너무 철학적인 물음에 할 말을 잃기도 한다. “엄마, 할머니는 왜 늙어?” 사람은 늙는다. 할머니도 사람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늙는다는 명쾌한 3단 논법을 펼쳐야 할지, 늙음이란 자연의 섭리이며, 이치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 “엄마도 늙고, OO도 늙어가고 있어. 과일이 익으면 맛있듯이, 늙는 건 더 멋있어지는 거야. 언니가 되는 거야. 멋진 거야”라고 말하곤 혼자 뿌듯하다. 그래 이 정도면 훌륭한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울상이 돼 또 묻는다. “늙으면 하늘나라 가는 거잖아. 거기 가면 엄마 못 보잖아” 아이를 달래며 부드럽게 답한다.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거기서 만나면 되지. 늙기 전에 더 많이 많이 놀아야겠다” 늙음과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말을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데도 아이는 또 묻는다. 엄마가 해준 말이 이해가 잘 안 가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묻는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아이는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기도 한다. 그렇게 끈질기게 묻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의 사람은 묻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아니라고, 난 질문을 잘한다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음의 수준을 살펴보자. 옳고 그름의 진위 확인 질문이나 사실 확인 질문에 불과할 것이다. 깊이 있게 묻고, 깊이 있게 답하지 못한다. 왜냐 실제로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질문이란 내가 얻고자 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해당 분야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없다면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없다.

예전에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교단에 선 선생님께, 일터의 선배에게, 포탈사이트 지식인에게 주로 물었다. 그런데 이제는 생성형 A.I.에게 잘 묻고, 양질의 답을 얻어내는 것이 능력인 시대가 왔다. 이른바 프롬프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A.I.가 내놓은 답변을 바탕으로 질문을 추가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연속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답을 내어놓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물어야만 한다. 그런 과정이 쌓이면 잘 묻는 법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으니까. 시대적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렇게 지식을 쌓고 생각을 키워 왔다. 멀리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친애하는 인공지능 친구에게 질문을 던진다.

- 인간이 왜 늙는지를 5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해줘. 단 조건은 동심을 파괴하지 않아야 해. 또한 늙음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해. 예시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해도 좋아. 50자 내로 작성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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