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동양일보] 시대가 변하면서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이전에 없던 많은 사업들이 학교에 도입되고 시행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학교 급식, 방과후학교, 학교돌봄 등이 있다.

사업들이 도입될 때 나름의 명분과 사회적 요구가 없지 않았다. 지금도 일정한 선기능을 수행하며 사회적 요구, 사회적 필요를 일정 정도 충족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기는 하나 가끔씩 이러한 사업들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는지, 올바른 방식으로 학교에 도입되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성장기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영양 제공과 식문화 교육을 명분으로 학교 급식이 도입되었지만 획일적인 집단급식과 반자율적인 강제급식의 모습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기적성 강화, 사교육비 경감을 화두로 도입된 방과후교육은 어떤가. 과연 아이들의 특기적성을 더 많이 길러내고 사교육비를 경감하였는가. 학교에서 방과후교육을 추진할 때 적절한 인력과 예산을 투여하였는가.

맞벌이 부부의 자녀돌봄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도입된 학교돌봄은 또 어떤가. 어린 자녀들을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장시간 보호하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보았는가. 돌봄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공간 확보는 이루어졌는가.

학교의 본질적인 기능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면 나머지는 부수적인 일일 텐데, 학교를 방과후학교라는 이름으로 학원화하고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보육 기관화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이렇게 묻고 있는 학교 교원들이 많은데, 그 직접적 이유는 새로운 정책 사업들이 도입될 때마다 관련 행정업무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습과 생활지도에 전념해야 할 교사가 학원장처럼 방과후 강사를 선발, 관리하고 돈을 걷고 통신문을 보내고 학부모 민원을 처리해야 했다. 돌봄행정 업무도 교사들이 업무담당자가 되어 학생 선정, 물품 구입, 대체인력 선발, 보고 등등 사무를 처리해야 했다.

이러한 측면은 단순히 교사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교사가 원래 수행해야 할 교육활동의 침해를 가져오며, 나아가 학교가 집중해야 할 교육 본연의 기능에 대한 압박과 위협을 초래하기도 했다.

새로운 사업이 도입되고 새로운 업무가 추가된다면 마땅히 그 일을 수행해야 할 인력이 충원돼야 함에도 인력충원은 생색내기에 그쳤다. 대부분은 교원에게 전가되거나 겸임사무로 지정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왔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늘봄학교를 둘러싼 정책도 논란이 많다. 어린 초등학생을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보겠다는 것이다. 성장기 아이들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하여 이렇게 장시간 학교에서 데리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혹 아동학대의 혐의는 없는가.

늘봄학교는 초기 이름이 전일제학교였듯이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 등 가정에서 돌볼 여력이 안 되는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명분이다. 부모를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정책이 올바를 텐데, ‘부모는 일해라, 아이들은 우리가…’식이다.

어쨌거나 정부는 늘봄지원실을 설치하고 실장인 지방직과 늘봄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실무사를 충원하겠다는데, 실장은 거대학교에만 배치하고 대다수 학교는 교감 등이 겸임하도록 하면 또다른 교육적 위협 정책이 될 것이다. 또 지금도 돌봄전담사 확보가 어려운 지역이 적지 않은데, 늘봄학교 실무사 충원은 그저 낙관할 일인가 싶다. 만약 인력 충원이 안 되면 또다시 교사를 비롯한 교원에게 전가되지 않겠는다.

교육청에 있던 시절 읽었던 구절이 떠오른다. ‘정책 입안자는 선의로 기획하지만 현장에서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입안자가 알고 있는 현장과 실제의 현장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은 늘 사무실 안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법이다.’

정부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이 진정으로 옳은 일인지,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추진하고 있는지 의아하다. 목적이 옳아야 하고 방법도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목적이 옳다고 나쁜 방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가 시대적 요구와 필요를 외면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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