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동양일보]‘이성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프랑스 국민은 귀족제도 치하 못지않게 혁명 정부에서 존재 가치를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Robespierre) 본인은 세상이 바람직하게 바뀌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중은 갖가지 전통과 문화를 혁명의 이름으로 저주하며 헤집어 놓는 정치에 신물을 냈다.

공포 정치는 인간을 가축처럼 죽이는 폭정이었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사람답게 대접하지 않는다는 느낌, 그들끼리의 초(超)이성이 대중의 감성을 압살하고 있다는 느낌을 점점 원망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가톨릭 미사와 축일(祝日)의 거리 축제를 폐지한 후 만들어낸 프랑스 ‘최고 존재의 제전’은 몹시 지루한 행사였다.

로베스피에르는 잘 정돈된 새 종교의식을 통해 민중을 완벽히 계몽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쾌락적, 설화적 요소들은 모두 빠지고 교육적인 속성이 있는 콘텐츠만 종교 행사 안으로 끌어모았다.

그 결과 제전은 이데올로기를 위한 선동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이게 무슨 피난길이냐”라며 의식 참가를 위한 행렬을 비웃는 군중도 많았다.

로베스피에르는 왕을 단두대에 세운 뒤 채 2년이 되기 전에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 앞에 섰다.

자코뱅당 출신의 혁명 지도자들이 단행한 공포 정치에 진절머리를 내던 사람들로부터 탄핵을 당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혁명가 자신도 모든 것들이 계획한 대로 될 줄 알았을지 모른다.

“너에게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질문, 사실은 별로 좋은 물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계획 때문에 망하고 죽임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불확실성 특성이다.

다양한 이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들의 행동은 이성 못지않게 감정에 많은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무슨 일을 추진하든지 평범한 사람들이 감정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절차를 고민해야만 한다.

미디어와 SNS를 통해 수많은 의견이 금세 표출되고, ‘대세’가 쾌속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실’보다 ‘합의’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옳음’을 강요하기보다, 그와 내 ‘옳음’ 사이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

합의되지 않은 진실은 얼마든지 가짜 뉴스나 거짓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고, 로베스피에르처럼 죽지는 않아도 ‘사회적 단두대’에 서게끔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첫 공화 독재자는 자신이 세운 계획에서 어긋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했고, 나중에는 가만히 있어도 미워하는 감정을 갖게 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내 편견과 취향을 받아주는 소수 지지자에게만 취해 다수 의견과 감정을 무시하는 인물은 언제든 미끄러지게 되어 있다.

민심은 이율배반적이며 야수와 같은 것이다.

흐름이 바뀌면 내 옳음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감정선을 논리와 사실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염려해야 한다.

혹시나 그들이 소중하게 느끼는 가치를 하찮다고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나름대로 옳게 돕는 답시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들지는 않았는지, 썩 괜찮아 보이는 조언이 누군가의 실생활을 영 딴판으로 실패하게 할 위험은 없는지다.

필자가 거주하는 충주시는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으로 충주문화관광재단이 나서 문화 다양성 확산을 위해 최고의 문화도시를 조성하게 된다.

재단은 역량 강화 등 다양한 문화의 균형적 발전을 통해 도시 전체를 변화시키면서 향후 문화향유가 집중될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문화관광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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