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3058명인 의대 정원을 연 2000명씩 5년간 1만 명 늘린다는 정부방침에 보건 의료계가 국민과 환자를 볼모로 집단행동에 돌입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도 보건의료 재난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하고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멈추질 않는 분위기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아닌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재난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한 건 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필수의료의 핵심인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대란은 현실로 다가왔다.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과 주요 94개 수련병원에서 소속 전공의의 78%(8897명)가 사직서를 내고 이 중 7863명이 근무지를 벗어났다.

충북도내 의료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공의 이탈이 이어지며 충북대병원의 경우 전체 전공의 137명 중 122명이 업무개시(복귀)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또 청주성모병원 21명, 건국대 충주병원 9명, 청주효성병원 4명, 제천서울병원 3명, 충주의료원 2명 등 도내 전공의 200명 중 161명이 근무지를 이탈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응급·당직 체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전공의들이 사실상 파업에 들어가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의료 공백의 폐해가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돼가는 형국이다. 일부 대형병원에선 신규 입원환자는 받지 않고 기존 환자는 퇴원을 앞당겨지는 혼란상도 나타난다.

이에 충북도는 보건소 연장근무와 공공의료기관인 청주·충주의료원을 상황전개에 따라 평일 진료시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고 주말과 휴일 진료를 확대 운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요 대형병원은 이미 수술 축소·연기, 응급실 포화 등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전문의와 간호사가 간신히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사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의사들이 대승적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환자를 방치한 채 집단행동을 벌이는 건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의사의 사명이 환자를 구하는 것인데 환자를 볼모로 실력행사를 벌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의사 증원 반대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의사 수는 멕시코를 빼면 최하위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의사 부족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대대적인 의대 증원이 불가피한 것이다. 물론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연 2000명씩 5년간 1만 명 늘린 뒤 이후 정원을 재조정하겠다는 정부 방침 중 1년에 2000명씩 증원이 적정한지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주장하는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는 말이 안 된다. 더욱이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서는 건 밥그릇 지키기로 비칠 뿐이다. 필수·지방의료 공백을 메우려면 관련 수가 인상과 의료사고 시 의사 처벌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의대 증원 없이는 반쪽짜리 해법일 뿐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 보호를 외면하는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은 정당성을 부여받기 힘들다. 하루빨리 집단행동을 멈추고 병원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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