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동양일보] 선거일에 시골에서 올라온 한 문맹인이 아리스테이데스(Aristeides, BC520~BC468)에게 다가가 도자기 조각을 내밀며 본인이 불러주는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아리스테이데스가 누구 이름을 적을지를 묻자, 시골농부는 ‘아리스테이데스’라고 대답한다. 아리스테이데스가 궁금하여 이유를 묻자, 시골 농부는 “만나는 사람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공정하다고들 하니까 지겨워서 그럽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도편추방제(ostracism)에 따라 아테네에서 추방됐다가 기원전 480년 9월 페르시아가 침략하자 시민의 부름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아리스테이데스 추방에 찬성한 시골 사람은 문자적 문맹이면서 거짓과 진실을 분별 못하는 정치적 문맹에 갇힌 사람이었다.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 40여년의 시차로 등장하여 아테네가 주요 활동무대였고 역사적 격동기에 살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펠로폰네스 전쟁이 스파르타의 최종 승리로 끝나면서 아테네가 쇠락해가는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패권이 알렉산드로스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쇠락의 원인을 정치인의 무지와 연결시키면서 “참된 정치술이란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치는 것”, “캐묻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며 시민의 분별력을 높이려 했다. 플라톤은 지혜로운 철인을 통치자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정치란 지배집단의 이익이 아닌 전체 시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바른 정치를 원한다면 우리는 판단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역사는 영국에서 탄압받던 종교적 소수파인 청교도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초기에는 13개주가 연합한 느슨한 형태의 규약이 만들어졌고 조세권과 외교권도 각각 행사하였다. 이후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공동방위에 이점이 있는 강력한 연방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 때 연방공화국의 핵심요소는 ‘소수파 보호’였고 이를 위해서 다수파에게 유리한 직접민주제보다 대의민주제를 결의한다. 하지만 막상 선출된 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시민위에 군림할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견제장치가 필요했다. 하여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서로 견제하도록 삼권분립 체계가 만들어졌다. 삼권분립이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행정부가 입법부나 사법부와 손을 잡는다면 삼권분립은 지켜질까. 시민이 자신의 기본권을 지키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똑똑한 유권자가 되는 것이다.

거대한 목마(木馬) 옆에는 “귀향하면서 우리 그리스인들은 아테나 신에게 감사의 선물을 바치노라!”고 쓰인 팻말이 있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게 되자, 목마 안에 병사를 숨기는 트로이 목마작전을 감행했다. 아폴론 신으로부터 불신(不信)의 저주를 받은 카산드라(Cassandra)는 트로이의 예언자로서 목마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트로이 사람들은 곧이듣지 않았다. 트로이의 멸망은 정치인들의 오만과 헛소문에 속은 시민들의 우매함 때문이었다. 진정한 정치인은 용한 예언자임을 자처하지 않는다.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며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은 핵심을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화술과 상대의 심리를 훔쳐보는 용한 기술이 있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부여된 일에 헌신하려는 소명의식, 대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책임감,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문제해결력, 말씨나 태도에서 드러나는 품격, 리더십의 기반이 되는 도덕성 등이다. 우리는 선거에서 당선만이 목적인 정치인을 감별해 내는 용한 감별사가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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