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신앙의 터'
조선 도읍지로 거론된 명당... 푸근한 고향 어머니 품 같은 곳
명성황후 천도대재도 지내... 중하스님 “지혜·성찰로 불자 맞아”

하늘에서 바라본 신원사 전경.
하늘에서 바라본 신원사 전경.

국립공원 계룡산은 풍수지리에서 우리나라 4대 명산으로 꼽힌다. 삼국사기에 신라의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명산으로 정했을 만큼 길지(吉地)로 알려진 곳이다.

계룡산에는 3대 사찰 신원사와 동학사 갑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제 말 의자왕 때 창건한 신원사는 3대 사찰 중 가장 조용하고 단아하며 푸근한 고향의 어머니 품 같은 명산대찰이다.

조선 건국 후 새 도읍지를 어디로 할지 고민하는 태조 이성계에게 무학대사가 함께 찾아가 직접 답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무학은 당시 신원사에 산신각을 지어 계룡산 신에게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 후 신원사는 전국의 입시·취업준비생, 진급을 앞둔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이 찾아와 간절한 치성을 드리는 곳이 됐다.

신원사 안에는 대웅전·향각(香閣영원전·대방(大方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八作)집이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이 주존불로 봉안돼 있다. 또 향각의 불상은 명성황후가 봉안한 것이라고 전한다.

문화재로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인 오층석탑과 부도가 있다.

 

신원사 중하 스님.
신원사 중하 스님.

신원사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의 전각이 하나 있다. 전국의 모든 사찰 중 유일하게 보존돼 있는 중악단(中嶽壇)’이 그것인데 불교문화와 국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조물이다.

조선조 때 왕실에서는 국태민안을 빌기 위해 묘향산에 상악단, 지리산에 하악단, 계룡산 신원사에 중악단을 세웠다. 전국 8도에 3개의 산신각을 지은 것으로, 왕실은 해마다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

지금은 상악단과 하악단이 모두 소실돼 신원사 중악단만 유일하게 남아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중악단은 특히 명성황후가 고종 16(1879)에 다시 복원을 한 인연이 있다.

그래서 해마다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된 108일에는 중악단에서 고종황제·명성황후 천도·추모대재를 연다.

중악단의 천도·추모대재는 중하스님(77)이 주지로 부임한 이듬해인 2012년부터 봉행하고 있다.

신원사는 불심을 통한 신앙의 전파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자비나눔도 전개하고 있다.

 

계룡산 경내 천수관음전 전경.
계룡산 경내 천수관음전 전경.

중하스님은 전 조계종 원로의원의 법호를 딴 벽암장학회와 공주시 한마음장학회에 해마다 총 4000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기탁한다. 계룡면 지역의 다문화가정과 독거노인 등 불우한 이웃에게는 쌀과 생필품을, 군부대 장병들에게는 간식과 위문품을 전해오고 있다.

중하스님은 제가 불가에 귀의한 것은 6살때입니다. 부처님의 뜻이었겠지요. 그 은혜를 포교와 이웃사랑으로 갚고 있어요. 그건 부처님이 제게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모든 것을 불심으로 돌렸다.

취미활동으로 한지에 그리는 중하스님의 부엉이 그림은 화가의 실력을 넘어선다. 지금까지 숱한 개인전과 30여회의 회원전·단체전을 통해 그림 실력을 뽐냈다. 각종 공모전 수상 경력도 갖추고 있다.

우리 모두는 지혜로써 성찰하고, 선에 이르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정성에 다하고, 깨달음으로 이어지면 누구나 선()에 다다를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원사는 늘 부처님의 자비로운 손길로 방문자들을 맞이합니다. 불심은 누구에게나 항상 만복입니다.”

중하스님의 신앙 선언(禪言)이다. 공주 유환권 기자 youyou999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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