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환 수필가

양미환 수필가

[동양일보]얼마 전 육거리 시장을 지나고 있었다. 인도를 걷고 있는 나에게 생면부지의 한 중년여성이 갑자기 앞을 가로 막고 자신의 시장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이 나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말을 이어간다. 여성의 시장가방에는 통이 실한 배추만이 가득 담겨있다. 중년의 여성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추를 한 통에 1000원씩 샀다고 자랑을 이어간다. 배추를 1000원에 팔은 할머니 쪽을 가리키며 아직 남았으니 나도 빨리 가서 사가라고 재촉한다. 얼마나 좋으면 생면부지의 나를 붙들고 이야기를 할까라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행복한 생면부지의 여성은 머릿속을 맴돈다. 1000원짜리 배추로 김치를 담그는 내내 그녀는 또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자 행복이 정말 멀고 높지 않게 다가온다. 1000원의 행복은 그녀의 주방을 활기차게 만들 것이다. 행복에 들뜬 그녀가 행복으로 버무린 김치를 먹으며 그녀의 가족 또한 1000원짜리 배추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을 만끽하리라는 상상만으로도 내 기분까지 마냥 좋아진다.

이 배추를 1000원에 팔은 할머니에게서부터 시작된 행복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다. 배추를 10000원에 산 여성의 가족은 물론 생면부지의 나에게 까지 전해진 파급력이다. 혼자 행복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혼자 행복한 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행복한 한 여성은 자신의 행복을 나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추를 1000원에 팔은 할머니를 알려주며 나도 빨리 가서 사기를 원했다. 자신과 행복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명절이라고 올 사람도 갈 때도 없는 독거 가구인 나는 끝내 천 원짜리 배추를 사는 행복을 만끽하지는 못했다.

행복은 전달되어야 한다. 나만 행복해서는 안 된다. 행복이 파급되지 않으면 다음 행복은 들어 올 자리가 없다. 그녀가 배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면 배추는 아무 의미 없는 1000원짜리 배추일 뿐이다. 그녀가 자신의 행복을 퍼 돌리며 나누었을 때 배추는 1000원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 1000원 이상의 가치로 생면부지인 나에게 까지 전달 된 행복이다. 한 사람이 행복하면 그 주위의 모든 사람이 행복해진다. 그녀에게서 전달되지 않고 머문 행복은 행복이라 볼 수 없다.

새해에는 나도 행복의 근원지가 되고 싶다. 나로부터 시작된 행복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면 그보다 의미 있는 삶도 없을 것이다. 거창한 행복이 아니어도 좋다. 1000원짜리 소소한 행복에 젖어 든 일상도 아름다울 것이다. 긴 세월을 살며 1000원짜리 행복이 왜 없었겠는가. 어쩌면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사는 불감증으로 1000원짜리 행복 하나를 전파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일상에서 찾은 행복으로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는 반전의 드라마를 쓰며 내 소풍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