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동양일보]며칠 전에 끝난 모 신협 임원선거에서 패했다. 참패였다. 가슴이 아팠다. 후보자를 도와주는 위치에 불과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힘이 들 만큼 쓰라린 경험이었다. 선거전에 깊이 개입하게 되면서 당락의 충격이 그대로 전달된 셈이다. 이번 선거전에 쏟은 노력이 그렇게 쉽게 물거품이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동안의 고단했던 여정에 대해 위로가 될 말은 없다. 낙선한 후보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락으로 떨어진 후보자의 공황상태가 진정되기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낙선한 다른 후보자들도 축배 대신 쓴잔을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선거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서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작은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후보자와 연이 닿으면서 신협 선거캠프(?)에 합류하게 됐다.

신규 조합원을 늘리는 일이 확실한 도움이 되겠다 싶어, 지인, 친지, 단체 회원들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어려운 부탁을 했다. 거절에 대한 상처도 있었지만, 한 명 한 명 도움의 손길이 늘어날 때마다 고마움과 뿌듯함에 힘을 얻었다. 선거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 선거가 임박해 오면서 본격적으로 선거를 돕기로 했다. 동네(조합) 선거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일반 선거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막상 선거캠프에서는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동네 선거의 특성상, 우선 제대로 된 선거캠프가 꾸려지지 않는다. 선거본부만 있었지 조직 자체가 없다. 연줄연줄 아는 사람이 조직이라는 착각 속에 있다. 이미 내 편, 네 편이 정해져 있어 현장에 나가 지지를 호소하고 얼굴을 알릴 필요가 없다는 안심 코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사고가 동네 선거에서는 크게 먹히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부실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세간의 평판 정도가 상대진영에 대한 정보의 전부다. 전략회의를 하고 대책을 세워도 관습이라는 탄성에 의해 제자리를 맴돌 뿐,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선거 기상도를 감지하지 못한다. 후보자들은 듣고 싶은 정보에만 의지하거나, 내 편으로부터 받는 응원의 말 한마디에 위안을 얻곤 한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최종 투표인들을 움직이게 할 연결고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란 점을 간과하기 쉽다. 동네 선거의 맹점이라면 맹점이다.

원팀이란 이름의 후보자들의 연합도 각각의 셈법이 달라 진정한 합이 이뤄지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패인을 분석하자면 끝이 없다. ‘만약, 어떻게 했더라면’하는 가정법이 난무할 뿐이다.

전쟁은 끝났다. 선거는 패했다. 요즘 신조어처럼 ‘할·많·하·않’이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가 정답이다.

교훈도 있다. 선거 후유증을 어떻게 빨리 치유할까가 관건이다. 패자 부활전은 없다. 패자진영에서는 폐허가 된 낙선후보자의 상처가 하루빨리 회복되도록 협조해야 한다.

결과와 관계없이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필자로서도 ‘도와주십사’ 말 한마디에 흔쾌히 어려움을 자처하신 153명의 은인을 잊을 수가 없다.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가 예수께서 던지라는 곳에 그물을 던져 끌어 올린 큰 고기의 숫자가 153마리다. (요한 21:11).

이번 선거에서도 어려운 걸음을 주저하지 않았던 인연의 사람들, 고맙다. 고르지 못한 날씨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직장에 휴가를 내고,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고, 한 시간 이상 기다려 투표를 하고 간 은인들을 잊지 못한다. 선거에서 패배는 상상외로 쓰라리다. ‘환상과 실상’이라는 순한 제목을 달았지만, 후보들은 개표결과 발표전까지 마지막 환상을 붙들고 있다가, 낙선의 결과를 확인하는 실상의 순간, 끔찍한 고통으로 돌아오는 상실감과 마주하게 된다.

총선 후보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즈음이다.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한 후보자들에게 미리 손을 흔들어주고 싶다. 응원과 위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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