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재래시장에서 음식을 사 먹고 시장상인과 악수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연일 보도된다. 선거철이기 때문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백 마디의 말보다 친서민 이미지로 직관적으로 전달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재래시장이 권력을 욕망하는 이들의 선거유세 무대로 남겨진 것인가, 냉소를 머금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친서민 정책을 벌이고자 하는 마음의 진정성이 쉬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 진정성을 묻다니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거 아니냐는 타박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하지만 진정성은 중요하다. 해 보려다 잘 안 될 수도 있고, 해 보았는데 결과가 뜻과 다를 수는 있지만, 신념은 진짜여야 어려워도 일을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변화는 협력을 통해야 가능한데 상대가 가진 신념의 진정성을 믿지 않으면서 일을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변화를 위한 노력에는 지지자도 반대자도 있다. 오해도 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편인지 아닌지 모르는 채로 뭐가 닥칠지 모르는 세상을 열어가는 일은 장대처럼 우거진 풀숲을 헤쳐나가는 것과 같다. 아쉽게도, 성평등 신념에 바탕을 둔 조직에서 일을 하는 것은 이런 모양새일 때가 많다.

여성단체 행사에 참여해서는 짐짓 존경하는 눈빛으로 격려의 악수를 건낸 정치인들이 진정 성평등 가치에 신념을 가질까? 성평등 사업에 권력자들이 관심이나 이해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때가 적지 않다.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모든 분야의 일을 세세히 알아야 한다는 요구를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경우는 곤란하다. 말로는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으론 전혀 관심이 없는 정치가를 보는 것도 입맛 씁쓸하다.

성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었으니 성평등 정책은 이제 없어도 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 새로운 유형의 성착취와 노동의 변화, 섹스돌이 던지는 새로운 친밀성 이슈, 여성의 일이던 돌봄의 실종 등의 사회변화만 들여다봐도 이런 태평한 생각은 곤란하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와 성차별을 새로운 양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는 고령사회 대응도 일가정 양립도 근본적으로는 어렵다. 성평등 관련 새롭고 어려운 과제가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성평등 신념을 진정으로 지지하는 권력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인재도 사회적 인프라도 부족한 지역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성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의 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책이 중요하고, 정책발전을 위해서는 성평등을 위해 먼저 나서서 변화를 이끌었던 여성단체들의 비판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성평등을 위해 일하는 특정 여성단체에게 정부가 예산지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바른말하는 듯이 한 사람이 똑같이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다른 여성단체와 사회단체 예산수립에는 몹시도 협조적인 경우도 있다. 성평등 단체나 조직의 행사에서 축사도 하고 얼굴을 자주 비치면서도, 뒤에서는 그 조직을 흔들기도 한다. 표관리가 중요하다지만 신념을 속이고서 표를 얻는 행위를 계속 그러려니 해야 할까.

많은 권력자들에게 성평등 가치는 진정한 신념이기보다 그저 처세술일 뿐인 것을 안다. 권력을 위해 나서는 이들이 진정성 없이 성평등을 지지하는 척하며 표를 얻으려 하는 건 아닌지 유권자들이 면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곧 닥칠 선거는 산적한 성평등 과제해결을 위해 한국사회가 그리고 충북이 진일보 할지 여부를 나누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이런 변화에 따라 조직 변화를 겪을 수도 있는 성평등 관련 모든 기관과 기구의 종사자들도 관련업무의 기술자로 머물지 않도록 스스로의 진정성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도 믿지 않는 성평등 사업이 잘 되고 성평등 가치전파가 잘 이루어질 리는 없다. 진정성을 가지고 해내지 않으면 지지자도 얻기 어렵다. 성평등을 향한 진정한 신념들이 모이는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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