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기차가 지나가는 마을, 몇 년에 한 번쯤 술 취해 선로 베고 자던 이가 참변 당했다는 식 이야기가 횡행했다. 기차 달릴 때 그 바람에 애들 빨려든다고 기적 소리만 나도 피하라는 단속도 심했다. 동네 아이들은 멱 감을 나이만 되면 둑 위에 서서 지나는 기차에 대고 주먹감자를 날렸다. 누가 무슨 노래를 시작하면 목소리 높여 같이 부르면서 감자를 날리기도 했다. 쑥떡 먹이기라고 했다. 기차 보면 손 흔들어주라는 건 차차 나중 배우는 일이고, 터울 높은 아이들에 섞여 기차에 쑥떡 먹이는 놀이를 먼저 익혔다. 여름날 조롱하고 약 올리듯 주먹질을 해대다가 마지막 칸 꼬리가 보이면 퐁당퐁당 물로 뛰어들었다. 누구도 제지하는 일 없는 놀이었다. 어디에도 않는 주먹질을 기차에 대고 하는 놀이는 이상하기는 했다. 반감이나 조롱을 담은 놀이는 텃세 부리기나 낯선 문명에 대한 거부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밤에 보면 노랗게 불 밝힌 기차 안은 동화 속처럼 안온하고, 그 안에 또래 비슷한 아이라도 보이면 마음이 달뜨기도 하는데 반감 가질 이유도 없었다. 한 동네 서너 성씨들이 모여 집성촌 비슷하게 고만고만 사는 처지이고, 풍속이 드센 것도 아니었는데 어째서 기차를 조롱 방식으로 대했나.

사람은 놀이하는 존재인 호모루덴스로 태어나 놀면서 살아간다. 놀이는 일상의 당위나 책임을 벗어난 즐거움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예술과도 겹쳐진다. 사람은 놀면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익히고 창조하고 회복한다. 놀이 자체가 문화라면 동네 크고 작은 아이들이 열을 지어 기차에 주먹질해대는 놀이는 어쩌면 무언가에 닿아있을 수 있을까.

그걸 신고산 타령과 관련지어 이해해 본다면, 어랑노래, 화물차노래라고도 하는 함경도 지방 신민요 신고산 타령. 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을 이용해 대륙으로 나가려는 야욕을 철도부설로도 실천한다. 함경도 고산에 경원선 기차역이 생기자 새로 생긴 마을은 신고산, 있던 마을은 구고산이 된다. 노래 후렴의 ‘어랑’은 함경도 어랑군을 가리킨다. 신고산타령 지명은 모두 실제 장소이다. 처음 가사는 기차역이 생기자 함흥으로 떠나는 여인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다음처럼 개사된다.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뜯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양곡 배급 적어서 콩깻묵 먹고서 사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아버지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 소 배가 고파서 우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 갔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이름 석 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



구전되는 민요는 부르는 이에 따라 개사가 자유로운데 특히 일제때 개사는 저항의 방법이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놓고 군가를 강제배급했을 때도 그 군가를 개사해 부르면서 일제를 조롱했다. 신고산 타령의 배경은 경원선 철도이다. 항일의병들은 국권 상실에 분개해서 살벌하도록 철도건설현장을 자주 습격하면서 완공을 지연시켰지만, 일본은 한반도 물산 풍부한 지역마다 철도를 깔아놓고 애초 의도대로 조선을 수탈했다. 개사된 신고산타령에서는 지원병, 정신대로 자식을 뺏기고 이름마져 빼앗긴다. 이름을 바꾸는 창씨개명은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폭압이다. 이런 참혹한 철도의 역사와 어릴 적 놀이를 관련짓는 일은 씁쓸하고 대견하다. 쑥떡 먹이던 놀이가 공동체 기억 어딘가와 닿는 유추도 그럴듯해진다.

삼월이라 더 그럴 수 있겠다. 맨몸에 숨긴 태극기를 무적의 무기라도 되듯 꺼내들며 독립만세 부르던 순박하게 의로운 선열들 계셨으니 역사 뒤틀어 열매 과점하려는 무리들은 잠잠하기를 권한다. 대신 개사된 신고산 타령이라도 한 번, 특히 지나가는 기차에 주먹 감자깨나 날려본 이들은 꼭. 노래와 놀이의 역사 호명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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