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용 수필가

김향용 수필가

[동양일보]투어 3일째 되는 날, 야시로 산장에서 1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짐만 챙겼다. 가을빛은 어느새 초록에서 황금빛으로 곱게 물들어 간다. 이 길은 일본에서도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을 만큼 인기 있는 트래킹 코스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배낭 메고 걷는 모습은 알록달록 무지개빛 줄이 되어 광활한 습지에 물결치고 있다. 이국의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침묵하며 걷는 동안 길을 덮은 나무의 옹이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옹이 때문에 좁아지는 길에서는 잠시 멈추고 서로 배려하면서 천천히 걸어야 한다. 중심을 잃어 습지에 빠지면 깊이가 얼마인지 몰라 위험하다. 반드시 조심해서 목도木道로만 걸어야 한다는 가이드의 각곡한 당부다. 걷다가 불쑥 나타나 발길을 잡는 이 옹이는 분명 걸림돌이다. 판판한 나무 길에 튀어나온 이 옹이는 직경생장하는 나무의 성장흔적이지만 행인에게는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된다.

문득, 어느새 육십 중반을 넘어 노년의 삶으로 들어 선 자신을 떠올린다. 방금 눈에 들어 온 옹이가 유독 크게 보인다. 옹이는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나도 한때는 깊은 산속에서 많은 나무들과 살았지. 그때는 따스한 햇살도 노래하는 새들도 나에게 다가오곤 했지. 세월이 지나면서 비바람에 꺾이고 자라면서 가슴에 통증을 느꼈어. 그래도 이를 앙다물고 참으면서 견뎠어. 어느 날 나는 튼튼한 모습으로 자란 이 나무결에 옹이가 된 걸 알았어. 나도 30,40 대에는 어떤 일이든 자신 있고 두려움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어.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점점 자신도 없어지고 애지중지 키우던 딸들도 떠나가니 덩그런 빈집에 혼자 남아 있는 듯해. 통통하던 손등도 어느새 주름이 잡힌 내 모습을 보면서 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목도는 옹이를 품었을망정 마지막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길이 되어주고 있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이 대견하지 않아?”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죽는다. 앞으로 10년, 20년 사는 날까지 노년의 뜰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준비를 서둘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옹이가 되어 불편을 준 일은 없었는지, 앞으로 자식들에게 옹이처럼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경제적인 여유도 좋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이다. 욕심 내지 말고 생활 계획표 잘 만들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곧 미래의 내 모습임을 깨닫는다.

다시 옹이를 생각한다. 나무에게는 큰 상처가 되지만, 그래도 나무는 살아 있는 동안 옹이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 사람의 일생에도 수많은 옹이가 생기지만 그 옹이를 통해 인내를 배우고 단단해진다. 우리의 삶도 서로 보듬고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가지길 다시 다짐해 보는 이국의 트래킹 코스. 멀리 야시로 산장이 보인다. 오래 된 목조 건물 창문으로 비춰지는 저녁노을이 따스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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