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욱경 영동초 교사

성욱경 영동초 교사

[동양일보]‘편지를 한 장 쓸 때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 오달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본 뒤에야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 - 다산 정약용

편지와 글쓰기는 그 목적이 조금 다르지만,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도구로 문자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결을 같이한다. 당대의 성현인 정약용 선생님조차 편지나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임했다는 사실에 나 또한 글쓰기에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과의 소통을 통하여 나를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공감과 지지, 인정을 받으며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소통의 도구인 말과 글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

그중 글쓰기의 특징은 시간의 제약이 즉각적으로 따르는 말과는 달리 나만의 호흡에 따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얼마든지 표현을 다듬을 수 있다는 점이고, 이 과정에는 언제나 성찰이 따른다. 사람의 성향은 두 가지 표현의 방식 중에 말하기가 편한 사람과 글쓰기가 편한 사람으로 나뉘는데 나 스스로는 후자에 가깝다고 느낀다.

나의 첫 글쓰기는 2011년의 군 생활이었다. 나중에 삶이 힘들 때 이 시기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 년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게 되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의 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위로했고 이제는 글쓰기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번째 글쓰기는 2018년 6학년을 가르칠 때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칠판에 수필과 편지 형식의 글을 쓴 일이다. 그해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아이들과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는데, 일 년간의 글쓰기를 통해 몸소 깨달은 진리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이든 내가 열정과 시간을 쏟은 만큼 애정이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세 번째 글쓰기는 2020년 1학년을 가르칠 때 학급 홈페이지 알림장에 학부모를 대상으로 매일 같이 쓴 편지였다. 당시 코로나가 막 시작되어 개학이 미뤄지고,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이 병행해서 이루어졌는데 매년 고학년만 가르치다가 교직 생활 8년 만에 처음 만난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새롭기도 했고, 코로나로 더욱 단절된 학교와 가정을 잇기 위한 시도로 아이들의 학교생활 모습들을 묘사해서 게시판에 글을 쓰게 됐다.

당시에 코로나19로 인해 삭막해진 일상에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위로받고 있었는데 그 시기에 내가 쓴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그 문체를 닮아 있었던 신기한 경험을 했고, 학교와 아이들의 모습을 아름답게만 그리려고 했던 나의 경향성뿐만 아니라 독자의 성격에 따라 글을 내 자유로만 쓸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교사인 나는 매년 새로 만나는 아이들에게 두 가지 글쓰기 씨앗을 심는데 하나는 1년 내내 매일 아침 두 줄씩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와 하루, 두 줄과 두 줄이 모여 나만의 역사, 기록물이 한 권 완성된다. 두 번째는 매주 10줄 정도의 주제 글쓰기를 지도하는데 ‘나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라진다면 일어날 일’과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가 주가 된다.

오랜 기간 지켜본 아이들의 강점은 빠른 사고, 유연함, 수용성이다. 하지만 이 장점들은 요즘과 같이 수많은 미디어 정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것을 비판이나 성찰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로 이어져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가 꼭 필요한데 이는 아이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며 미디어 정보를 주도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언젠가 아이들 스스로 글쓰기를 생애의 벗으로 삼는다면 글쓰기는 세대를 넘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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